이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심리상담을 하는 광경은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심리상담은 비밀이 보장된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곤 했던 거였다.
무엇이 이러한 상담을 공적인 자리로 불러왔을까. 또 그 열풍만큼 후유증은 없는 걸까.
불안한 시대가 불러온
공감의 무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리 상담’은 비밀이 보장된 조용한 방 안에서 이루어지던 사적인
일이었다. 하지면 현재 이러한 상담은 모든 카메라의 시선이 드리워진 스튜디오 안에서
이루어진다. 상담자는 개인이 겪은 깊은 상처와 은밀한 갈등을 카메라 앞에서 고백하고, 그
감정의 파고는 편집과 자막, 배경음악과 함께 고조된다. 눈물은 클로즈업되고, 상담자의
따뜻한 조언은 ‘가슴 뭉클한 따뜻한 말’로 전시된다. 타인의 상담 과정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던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이건 상담일까, 아니면 하나의 연출된 프로그램일까.
오은영 박사를 필두로 한 심리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는 이상행동을 하기도 하는 아이들을
관찰카메라로 들여다보고 그 심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솔루션을 제공해 ‘기적 같은’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오은영 박사의 대표적인 육아 코핑 프로그램이다. 아이의 변화가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눈물 흘리는 부모를 보면서 시청자들도 빠져들고, 특히 비슷한 육아
문제를 겪는 이들에게 대리충족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방영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스타덤에 오른 오은영 박사가 2020년에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여전히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를
넘어 ‘국민멘토’로까지 불리게 된 오은영 박사는 이후 그 영역을 가정 문제 전반으로
확장했다. 다양한 고민을 해결하는 ‘전국민 멘탈 케어 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남보다 못한 부부의 갈등을 다루는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불안한 청춘들을 위한 상담 프로젝트 <서클 하우스> 등이 그 프로그램들이다.
심리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데는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와 관련이
있다. 경제 불황과 양극화, 급격한 사회변화에 팬데믹까지 겹쳐져 고립감과 불신 속에
살아가게 된 대중들은 누군가 나의 아픈 마음을 알아주기를 갈망하게 된다. 그 갈망을
채워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때로는 기적 같은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오은영 박사가
전문가를 넘어 ‘국민멘토’로까지 불리게 된 이유다.
무엇보다 심리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이를 통해 집단적인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유명인들조차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우리와 같은 아픔들을 꺼내놓는다. 저들의 불안과 상처, 트라우마, 갈등들은
우리가 겪는 그것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중들은 사적인 문제들을 꺼내놓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보며 나만 아프고 힘든 것이 아니라는데서 오는 일종의 안도감과 위로를
얻는다. 저들이 눈물을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며 그 감정을 대리해주는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된다. 방송의 위로가 실제의 내 삶에 도움이 되어주지는 않아도, 그 시청행위
자체가 작은 치유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상담이 예능화되고, 감정이 콘텐츠화될 때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상담의 본질과 방송의 연출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데 있다. 방송은 스토리여야
하고, 그래서 몰입과 결말이 필요하다. 따라서 방송으로 보여지는 심리상담은 극적 흐름에
맞춰 편집되고, 해결되는 양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등장하고 이를 진단하며
사연자가 눈물을 보이면 전문가의 조언이 이어지고 감동적인 마무리가 되는 식이다. 이
익숙한 구조는 마치 드라마처럼 상담을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의 상담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대화, 되짚기, 멈춤과 침묵, 때로는 후퇴를 동반하는 복잡한
여정이다. 하지만 방송은 시간적 제약과 시청률이라는 현실 앞에 그 과정을 요약하고
단축시킨다. 실제 상담과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또 방송의 특성상 사연자의 문제는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문제들이 같을 수는
없다. 저마다 개별화된 문제를 일반화할 때 시청자들은 그것을 자신의 문제에 대입시키는
일반화의 오해를 겪을 수 있다.
사적 영역 공개로
낙인 찍히는 일반인 출연자들
방송에 출연하는 사연자들에게도 위험성은 있다. 결국 이들 방송이 하고 있는 건 솔루션을
준다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지극히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은 출연자들이 겪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어린 시절의 상처, 떨어진 자존감 등을
꺼내놓는다. 이렇게 방송의 그릇에 담겨진 이들의 고백은 대중들에 의해 무한 반복
재생되면서 무수한 평가와 해석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출연자는 단지 자신의 문제를
공유했을 뿐이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캐릭터화된 인물, 때로는 ‘문제적 인간’이 된다.
방송이 나간 후 그 캐릭터화된 인물로 낙인 찍힘으로써 또다른 심리적 문제를 갖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심리상담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중들은 감정 소비에
대한 피로감마저 느끼고 있다. 처음에는 위로였던 콘텐츠가 어느 순간 감정 중독형 콘텐츠로
변모한다. 더 자극적이고 더 극단적인 사연만이 시선을 끌 수 있는 방송의 생리 속에서,
인간의 고통은 소재가 되고, 시청자는 그 고통을 소비하는 관객이 된다. 이는 본래 상담이
지향하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상담의 진정성과 방송 흥행 논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충돌은 바로 상담을 해주는
전문가의 윤리 문제에서 발생한다. 본래 보호와 비밀을 전제로 하고 그래야 진정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심리상담이지만, 스튜디오로 나온 상담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감정의
절정을 원하기 마련이다. 상담자와 연출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이 생기는데, 그것이
좁혀지지 않을 때, 시청자는 상담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출연자는 방송 이후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심리상담 솔루션 프로그램이 이러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실제로 오은영
박사는 그 대중적 인기와 상담의 본질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온 면이 있다.
하지만 치유가 하나의 형식이 되고, 감정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 방송으로 들어온
심리상담의 효용성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상담은 본래 내밀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며, 말을 해주기 보다는 들어주는 행위에 더
가깝다. 그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관계이고, 결말을 향해가는 스토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그러니 이러한 심리상담 솔루션 프로그램 앞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것은 진짜 상담인가 아니면 하나의 방송일 뿐인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