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칼럼
콘텐츠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영상저작물 특례의 개정

조병한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정책기획팀장

KoBPRA WEBZINE Vol.91

협회가 사업자와 저작인접권 사용료 협상을 하면 여러 사안에서 견해가 대립하기 마련이지만, 유독 견해가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콘텐츠산업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산업이 저작물을 원활히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창작자에게도 주어질 몫이 생긴다. 또 창작자에 대한 보상은 왕성한 창작활동의 인센티브로 작용하여 콘텐츠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협회와 사업자는 협상에서 상호 이익이 최대가 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저작권 정책의 최대 과제 역시 이것이라 한다. 1 문화와 관련산업의 향상 발전을 위하여 권리와 이용의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저작권 현안이라면 무엇이 되었건 기저에 놓인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이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이다. 현행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은 저작물 이용자를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데, 이것이 권리와 이용의 균형을 제대로 설정한 규정인지는 의문스럽다.

이번 글에서는 제도와 경제의 관계를 연구하여 2024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의 논지에 입각하여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의 문제에서 권리와 이용의 균형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다.

콘텐츠산업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의 적용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포용적 정치 제도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인물이다. 그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포용적 제도의 사례로 대한민국을, 착취적 제도의 사례로 북한을 거론하고는 이렇게 썼다.

“남북한 간의 이런 극명한 대조를 통해 일반적인 원리 하나를 도출해낼 수 있다. 포용적인 경제제도가 도입되면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보장이다. 사유재산권을 가진 자만이 기꺼이 투자하고 생산성을 높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하는 족족 도둑맞거나 몰수당하거나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업가는 투자와 혁신을 도모할 인센티브는커녕 일하고자 하는 인센티브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사유재산권은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게 공평무사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2

위 글은 정치 제도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고찰한 것이지만, 저작권 제도와 콘텐츠산업의 관계에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우선 콘텐츠산업에서 저작권은 위 글의 사유재산권과 같다. 콘텐츠산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창작자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하는 족족 매절계약을 당하여 권리를 빼앗기는 환경에서 창작자는 창작의욕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저작권은 분야를 막론하고 공평무사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행 저작권법의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은 착취적이다.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보장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영상제작자가 창작자의 저작권을 몰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당사자 간 특약을 맺으면 창작자가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영상제작자로서는 특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창작자는 예술 활동에 대한 내적 동기에 기하여 ‘K콘텐츠’라는 빛나는 성과를 일구었으나, 이와 같은 착취적 환경에서 언제까지나 창작자 개개인의 내적 동기가 작용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착취적 제도로 인한
K콘텐츠의 예견된 위기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착취적 제도는 다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착취하는 소수의 영향력 있는 이들을 위해 고안되는 것’이며, ‘착취적 제도 하에서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으나 그것은 포용적 제도의 성장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였다. 3 착취적 제도 하의 경제성장은 급격한 기술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며, 지속 기간이 매우 짧다. 포용적 제도에서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이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19세기의 프로이센, 20세기의 소련, 오늘날의 중국을 꼽았다.

이를 우리 콘텐츠산업에 적용해보면, K콘텐츠의 위기를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콘텐츠산업의 성공은 창작자에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착취적 제도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AI를 위시한 기술환경의 변화는 콘텐츠산업의 전반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길목에 다가서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산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냐,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기억으로 사라질 것이냐-하는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시점에 있다.

끝으로

지난 6월 30일 창작자연대는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영상저작물의 저작자와 실연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균형을 마련해달라는 취지다. 곧 관련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될 예정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이 발의된 적은 있었으나, 산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상임위를 통과한 경우는 없었다.

이 문제는 산업과 창작의 이항대립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말처럼, 착취적 제도로는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금 창작자와 사업자 모두가 ‘콘텐츠산업은 발전해야 한다’는 명제에 견해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책임 있는 콘텐츠산업 종사자라면 당장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근시안적으로 입장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위하여 어떤 제도가 필요할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홍승기, 저작권법의 목적은 ‘문화의 향상 발전’에 있다, 《예술경영》 제8호, 예술경영지원센터, 275쪽.

2. 대런 애쓰모글루 외, 최완규 역,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시공사, 2012, 119쪽.

3. 위의 책,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