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선재길을
걸으며

박여진 여행 작가, 백홍기 사진 작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그 시간, 그 세계는 온통 눈이었다.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희게 어른거렸다.
지구를 떠돌며 한 방울도 소실되지 않은 물이 허공 어디에선가 얼고 엉겨 다시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푸른 전나무 위로, 회색 석교 위로 내린 눈은 어딘가에 스며 온 지구에 흐르고 내리고 맺힐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이 지구의 부스러기들은 끝도 없이 물로 환원될 것이다.


우두커니 눈을 바라보았다.
눈을 바라보는 시간은 한순간도 환원되지 않고 소멸했다. 일 초도 쌓이거나 스미지 않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증발했다. 이따금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시간인 척 기웃거렸다. 이따금 눈이 사라지는 바람인 척 어디론가 흩어졌다. 이 기이한 기만이 월정사의 푸른 전나무 숲을 하얗게 덮었다. 사라지지 않는 척하는 시간과 사라지는 척하는 눈 사이로 선재길이 무심하게 이어졌다. 저런 무심함을 알고 있다.



‘신은 질문을 하는 자일뿐…
답은 그대들이 찾으라.’

드라마 <도깨비>에서 신은 술잔을 들고 무심히 말했다.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도깨비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저승사자에게 던진 그 무심한 대답이 어중간한 기억과 망각으로 살아가는 내 마음 어딘가를 찔렀다.


찔린 자리엔 투정과 애원으로 범벅된 염원, 질문지와 답안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엉성한 무지가 갈 곳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로 통하는 선재길은 숲으로, 길로, 다리로 이어졌다. 새로운 길로 접어들 때마다 나는 길을 더듬거렸다. 눈은 어려운 시험문제처럼 쉬지 않고 쏟아졌다. 그 눈에 발목이 푹푹 빠지고 축축해진 마스크가 얼어붙었다. 나와 일행은 흰 숲을 걸으며 간간이 웃고 간간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선재길 끝에 도착하려면 우린 더 걸어야 했고, 더 추워야 했다. 아무도 서로를 대신할 수 없었다. 각자 발밑에 펼쳐진 길을 직접 디뎌 직접 나아가야 했다. 길이란 본래 그런 것이었다. 걷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애원이나 무지를 변명 삼을 수 없는, 잔인하게 무심하지만 걷기만 하면 선선히 열리는.


우린 혹시 눈 속에 길을 잃지는 않을까, 잘못 들어선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간간이 길을 확인했다. 그때마다 ‘선재길’ 이정표가 안심시키듯 눈에 들어왔다. 이정표는 앞으로 눈이 얼마나 더 내릴지, 축축해진 발목으로 계속 걸어도 괜찮을지, 언제 흘렸는지 모를 핫팩은 어디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이 길이 어디에 도착하는지는 선명히 알려주었다. 애초에 이정표는 오직 길에 대한 답만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도 돌탑들이 있네.”

“그러게. 돌을 올리면서 다들 뭘 빌었을까요?”

“나도 하나 올릴래.”

“아서라. 돌 하나 쌓는다고 소원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맞아요. 어쩌면......”



길섶에 사람들이 염원으로 쌓은 작은 돌무더기들이 펼쳐져 있었다. 우린 저마다 돌 하나씩 주워 그 위에 올렸다. 이전에 돌을 쌓은 이들도, 우리도 알고 있다.
이 쉽고 소박한 염원의 행위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그저 돌멩이로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원을 모르는 어느 들짐승의 무심한 발끝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돌에 담긴 염원이 언젠가 나에게조차 잊힐지 모른다는 사실을. 하지만 위태로운 돌의 경사면 위에 신중하게 염원을 올리던 그 순간만큼은 어떤 간절함이 접착제처럼 달라붙었다.


‘어쩌면......’, ‘혹시......’ 같은 허약한 수식어에 달라붙은 간절함이 ‘기적’처럼 황홀한 수식어를 동반한 대답을 들고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잠시 마음 한켠이 반짝였다.


망자의 찻집에 산 자가 불쑥 들어온다.
화장실이 간절했던 그를 보고 저승사자와 도깨비는 말한다.
‘인간의 간절함은 열지 못하는 문이 없구나’


그 코믹한 장면이 애잔했던 건 ‘간절함’이라는 단어가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간절함으로 열 수 있는 문이 망자의 찻집처럼 아득한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저 길을 걷다가 누군가 쌓아 올리기 시작한 돌 위에 돌 하나를 얹는 미약한 간절함에도 문이 있을까? 간절함으로 여는 문만이 정답인 걸까? 번호키만 누르면 순순히 열리는 그런 문은 오답인 걸까? 살면서 열었던 무수한 문들은 어떤 답을 주었던가?


이윽고 상원사에 도착했다. 약해진 눈발 위로 햇빛이 반짝였다. 계단을 올라 상원사로 들어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여전히 세상은 백지처럼 하얬다. 아직 길은 끝나지 않았다. 선재길은 끝났지만 알지 못하는 길들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린 출발지로 돌아와야 했다.


왔던 시간은 사라졌지만 가야 할 시간은 아직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성긴 숲을 지나고 커다란 나무가 있던 빈터를 지나고 염원의 돌을 지났다. 우리의 염원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빈 계곡과 돌다리도 그대로였다. 다만 같은 길 위로 다른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비좁은 길 한 모퉁이에서 잃어버렸던 핫팩을 찾았다. 눈은 완전히 그쳤다. 허공에 가득 나부끼던 눈은 한 번도 그런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두터운 담요처럼 세상에 내려앉아 있었다.


다른 계절이 오면 이 눈은 녹고 스며 또다시 유구히 지구를 떠돌 것이다. 강으로, 바다로, 비로, 눈으로. 시간은 여전히 무심하게 사라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를 문을 찾아다닐 것이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다. 선재길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약 9km의 숲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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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여진

주중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산책 여행을 다닌다. 파주 ‘번역인’ 작업실에서 작업하면서 월간지에 여행 칼럼을 기고한다. 저서로 『토닥토닥, 숲길』, 『슬슬 거닐다』, 역서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외 수십 권이 있다.

사진. 백홍기

월간지 사진기자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회 ‘포토청’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저서로 『토닥토닥, 숲길』, 『슬슬 거닐다』가 있고 [아파트 연가]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 활동 및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