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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은 라디오 작가
안녕하세요. 류정은 작가님.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류정은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MBC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라디오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이동건 이재은의 클릭1020>을 시작으로 (‘클릭’이라는 말이 그 당시에는 신세대 용어였답니다.) <김성주의 굿모닝FM>, <태연의 친한친구>,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을 거쳐,
지금은 MBC FM 91.9mhz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에 머물고 있습니다.
머물고 있다는 표현이 재미있어요.
머문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일하는 기분이 아주 많이 들지는 않아서입니다. 사전에 준비하는 원고는 오프닝과 매일 나가는 에세이 정도이고,
그 외에는 생방송 중에 무엇을 할지 정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말들을 정리해 프롬프터에 띄우거나, 청취자의 이야기와 신청곡을 고르고 추천하는 일이 주요 업무입니다.
라디오 작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류정은 작가님
라디오 작가의 경우, 계기가 다들 비슷할 것 같네요. 아마도 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자랐겠지요?
그것이 주로 <유희열의 FM 음악도시>인 경우를 많이 봤는데 제 경우에는 더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들었던 터라 <이문세의 별밤>이랍니다.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 라디오를 들으면 그 세상이 아득하면서도 가깝게 느껴졌어요. 그 세상은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맞아요!! 저도 좋아하는 DJ의 목소리와 노래를 듣는 일은 정말 멋진 추억이에요!
제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요.
대학교 때 함께 도서관 근로를 하던 친구가 MBC 라디오에 저를 소개해주었어요.
그때는 작가가 아니라 간단한 업무를 돕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답니다. 우체국에 가서 엽서와 편지도 가져오고, 신청곡도 정리하고, 음반실에서 CD를 빌리는 일 등을 했어요.
그러다가 일손이 부족해서 간단한 원고를 써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 기회를 제가 꽉 붙잡고 놓지 않았네요.
라디오 작가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류정은 작가님
자주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다보니 가끔 지각할 때가 있어요.
20년간 일하면서 생방송에 지각한 적은 없었는데 지각하는 날은 출근길에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를 들을 수 있어요. 방송 관계자가 아닌 청취자가 되어 디제이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바쁜 아침을 보내고 한숨을 돌리며 우리 방송을 듣는 건가 싶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프로그램에 따라 원고에 담는 얘기도 달라지는데, 지금은 주로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시장에 홍시가 나온 걸 보면, 홍시를 티스푼으로 갈라서 먹는 이야기나 감을 깎아 매달아 두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본 장독대나 무청 널어둔 이야기를 할 때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도착하는데 그럴 때 기분이 좋아요.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잊고 있던 어떤 순간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게 보람이 있어요.
어떤 청취자가 엄마 생각나는 방송이라고 했는데 그 말도 저는 참 좋더라고요. 요즘엔 그런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라디오 작가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나 습관이 있나요?
류정은 작가님
다른 작가들은 모르겠어요.대부분 작가들은 트렌드에 관심이 많으시죠.
재미있는 예능이나 영화에 훤하고 아이돌을 점찍는 눈이 탁월한 분들도 있어요.
제 경우에는 운이 좋게도 저의 인생 그래프에 알맞은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된 것 같아요. 그저 제 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글감이 저절로 생깁니다.
경제나 시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냥 9시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어서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매일 매일 그날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편이라, 눈과 귀를 늘 열어둡니다.
정류장에서 할머니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춘 아이들이 뭘 보는지 유심히 듣고 봐 두었다가 원고에 담아요. 주워서 쓰는 얘기들이에요.
라디오 작가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협회가 있습니까? 어떤 곳이며 어떤 권리를 보호받습니까?
류정은 작가님
한국방송작가 협회가 있습니다. 자세한 역사는 모르지만, 처음엔 드라마 작가를 중심으로 꾸려져서 지금은 예능 라디오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분야의 방송 작가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습니다.
매년 고료 협상이나 그 밖의 처우 개선 같은 것들을 작가협회에서 각 방송사와 협의하곤 합니다. 저는 일개 회원이라 큰 힘이 없지만, 가끔 개선된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받곤 하는데 든든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미국 비자를 받으려면 반드시 작가협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완전 ‘라떼’ 얘기지요?
협회에선 프리랜서라면 다소 쓸쓸할 수 있는 명절에 쌀을 보내주기도 하고 매년 건강검진 같은 혜택을 제공하기도 해요.
리조트 예약도 가능하고요. 참여한 적은 없지만 각종 교육이나 탐방 기회도 있습니다.
라디오 작가와 방송 실연자는 대체로 어떤 관계입니까?
류정은 작가님
일로 만난 사이이긴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일을 하면서 정이 들어요.
그러면 프로그램이나 코너 개편할 때 약간 감정이 개입되는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잘 나가는 사람이 갑인 것 같아요. 잡기 힘든 출연자는 출연 섭외에 엄청 공을 들이거든요.
출연자와의 관계는 친구 사귀는 것과 비슷해요. 잘 맞는 사람과는 프로그램이 없어져도 종종 연락하지만 아닌 경우에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조차 개별적인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요.
특별한 인연이었거나 인상에 깊이 남았던 방송 실연자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 내용을 조금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류정은 작가님
태연이 ‘친한 친구’ (MBC FM4U)를 할 때, 소녀시대 활동으로 굉장히 바빴거든요. Gee가 크게 히트하고 이후 ‘소원을 말해봐’가 승승장구할 때였는데 일이 너무 많다 보니 늘 피곤해 보였어요.
어떤 때는 거의 쓰러지듯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겨우 오프닝을 하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방송이 끝날 무렵 DJ인 태연의 컨디션이 좋아져 있더라고요.
일하면서 힘을 얻는다는 게 그런 거더라고요. 일이긴 하지만 친구와 얘기 나누고 좋은 노래를 들으면서 태연도 피곤함을 조금은 잊었던 것 같아요.
당시 태연은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지만 이미 큰 스타였어요. 하지만 춥다고 담요를 뒤집어쓴 모습이나 청취자들이 보내준 젤리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귀여운 애기였어요.
저에게 손편지도 몇 번 써줬는데 이사하면서 어디에 뒀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2022년 계획 중이거나 하고 싶으신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작품인가요?
류정은 작가님
라디오 작가들은 특별히 어떤 작품을 기획하기보다는 주로 매일 매일의 방송을 준비하는 편이에요.
개편이 시작되면 그때쯤 어느 프로그램에 가면 좋을까? 속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티 내지 않아요. 이미 그 프로그램에 좋은 작가들이 일하고 있으니까요.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콜이 오면 좋겠다……’. 저는 그렇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류정은 작가님
라디오 원고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라디오 작가’라는 직업으로 한꺼번에 묶이지만, 이 안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있어요. 시사 작가는 전혀 다른 세계이고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음악 작가도 있고요.
AM과 FM, 프로그램마다 다양한 작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답니다. 제 이야기는 제 경우에 비추어 충실하게 대답한 것들이에요. 저 말고 다른 라디오 작가분들은 전혀 다른 답을 들려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