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드라마 데뷔기

배우
이상진


2020년부터 드라마 <여신강림>, <신병 1,2>, 영화 <30일>과 최근 방영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소년시대>까지 배우 이상진은 그가 맡은 모든 일상의 캐릭터에게 비교불가한 독특한 매력을 입히고 있다. 빌런 소대장에게 미워할 수 없는 인간미와 시골 찌질이에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각인한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 이상진을 만났다.

KoBPRA WEBZINE vol.85  INTERVIEWER 차영남   PHOTO 디퍼런트컴퍼니 제공    

개그맨을 꿈꾸던
청. 년.


안녕하세요. 자기소개와 최근 근황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상진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30일>에서 엄귀동 역을 맡았고요, 지금 방영 중인 쿠팡플레이 <소년시대>에서 조호석 역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연극 <메이드 인 제인>은 지난 11월에 막을 내렸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작품 촬영과 공연으로 꽤 분주하게 지냈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차기작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소년시대>는 어떤 드라마인가요? 조호석이란 캐릭터도 소개 부탁드려요.
<소년시대>는 1989년 충청남도, 안 맞고 사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 병태(임시완)가 하루아침에 부여 일짱으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극 중에서 조호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게 됐고요. 병태가 전학온 부여농고의 대표 찌질이입니다. 힘도 약하고 눈치도 없지만 의리와 사랑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멋진 캐릭터 입니다.


peoplein_photo3

© 쿠팡플레이 <소년시대> 스틸컷



드라마, 영화, 연극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시네요. 이상진 배우님에게 연기의 시작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요?
연기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어요. 한마디씩 툭툭 던지면서 친구들을 웃기는 게 좋더라고요. 제가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는데, 반면 관심받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나의 이런 성향을 숨기지 말자.’라고 다짐하고 개그맨 되는 법을 찾았고, 연기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해서 연기학원에 등록했죠. 그런데 막상 연기를 배우면서 정통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거예요. 그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작품에서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 역을 맡았는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청년이 운명처럼 배우를 꿈꾸게 되었는데요, 데뷔로 어떻게 이어지게 되었나요?
2016년도에 연극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어요. 저의 첫 데뷔였죠. 지금 생각하면 그 무대에서 데뷔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의 무대 경험이 지금 연기 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드라마 데뷔는 tvN <여신강림>이에요.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얼떨떨했죠. TV에서만 보던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드라마 첫 촬영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초가을이어서 바람이 그다지 차갑지 않던 날이었어요. 세트장에 들어서며 그곳 특유의 합판과 페인트 냄새를 맡았는데, 그것마저도 너무 좋은 거에요. 내가 정말 드라마로 데뷔한다고 생각하며 정말 즐겁게 연기했어요.


연기자의 삶을 걸어가고 계신 지금, 행복하신가요?
모든 연기 지망생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연기 공부를 시작하고 연기자로 데뷔하는 것을 늘 꿈꾸었어요. 늘 기도했죠. ‘하느님, 연기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라고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그때 가졌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주변에서는 쉬엄쉬엄하라고, 너무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시지만,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요. 지금의 제 모습이 꿈꾸던 삶이라고, 그래서 ‘몸은 조금 힘들지만 행복합니다.’라고 말이죠.


사랑스러움을 꿈꾸는
배. 우.




흔히 연기자의 삶은 화려하게 보이지만 무대 뒤에서 감내해야 하는 부단한 노력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배우님도 ‘지망생’과 ‘데뷔’라는 두 단어 사이에 많은 기억들을 갖고 계실 텐데요.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 힘든 점이 있으셨나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었어요. 상투적이지만 배우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면서 남들처럼 사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투잡은 기본이고, 저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가 N잡을 가지면서 열심히 꿈을 꾸고 계세요. 저도 데뷔 전과 데뷔 초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냈어요. 30대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다른 친구들의 안정적인 삶과 저의 삶을 비교하며 자책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시간이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너무나 큰 자양분이 됐어요. 힘든 시간을 겪지 못하고 데뷔를 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연기를 소중히 대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함을 느끼진 못했을 것 같아요.


연기 이야기를 해볼게요. 맡은 배역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캐릭터가 가진 ‘사랑스러움’이에요. 그리고 그 ‘사랑스러움’은 화면에 담기는 제 연기뿐만 아니라 화면 밖 저의 자세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현장에서 촬영 스태프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촬영하면서 신뢰를 쌓고 좋은 유대관계가 형성되면, 편하게 연기 할 수 있고 그런 작은 점들이 모이면서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연기에 대해 배우님만의 독특한 습관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심지어 혼잣말을 할 때도 항상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요. 감정을 표출하고 캐릭터 연기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사들의 80% 정도는 우리가 항상 일상생활에서 하는 대화거든요. 드라마틱한 상황들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상황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늘 연습하던 대로 연기를 한기보다,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하니 훨씬 더 편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유연해지고 릴랙스된 상태에서 대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일상생활에서 어떤 감정이 생길 때도 그 감정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눈물 흘리며 거울 앞에 설 때도 많고, 씩씩대면서 거울 앞에 설 때도 많아요. 그러한 감정들도 잘 기억해 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쓰곤 해요.



peoplein_photo5


느낌 있는 배우
이. 상. 진.


배우님의 그런 습관들은 배우 지망생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걸까요? 배우님은 오디션을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오디션 대본을 새까맣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대사만 모두 외우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집요하게 분석한 후 연기하려고 노력해요. 대본을 붙잡고 캐릭터를 충분히 분석하고 이해한 다음에 연기를 하면 확실히 달라요.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두어야 하는 것, 이 캐릭터가 가진 서사를 비롯해 성장배경, 걸음걸이, 말투 등을 대본에 기록해 놓아요. 오디션을 보다가 혹시 대본을 잃어버렸을 때 대본을 살짝 보면서 연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니까요. 늘 그렇게 오디션을 준비했는데 영화 <30일> 오디션에서 감독님이 제가 맡은 역할이 자라온 역사를 생각해 본 적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한 후에 5분 정도를 신나게 말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캐릭터가 코믹해서 쉽게 다가갈 수도 있었던 역할이었지만, 이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싸웠던 저의 시간을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까요?
ENA<신병>에서 오석진 소위를 연기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전 작품들에서 주로 짧은 대사를 해왔다면, 이 드라마에서는 처음으로 제법 긴 대사가 주어졌어요. 캐릭터에 몰입해서 연기를 해서 그런지 애착도 많이 갔고 그래서 더 기억에도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더욱 감사한 부분은 시청자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죠. (웃음)


그러고 보니 <신병> 오석진 소대장의 캐릭터가 배우님이 조금 전 말씀해 주셨던 ‘일상의’ 습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캐릭터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미워할 수 없는 조금 얄미운 캐릭터였죠. (웃음) 닮고 싶거나 동경하는 배우가 있으세요?
연기로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애덤 드라이버(Adam Driver)입니다. <사일런스>라는 영화에서부터 눈여겨보다가 <결혼이야기>라는 영화에서 좋아하게 되었고,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서 완전히 매료되었죠. 애덤 드라이버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소시민부터 역대급 악역까지. 피지컬적인 부분이나 목소리 등을 너무 잘 사용하는 배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게임을 즐기지는 않는데 가끔 게임 ID를 만들 때 '박재한사랑해'라고 만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박정민, 안재홍, 변요한 선배님들의 이름 하나씩을 따서 사랑하는 마음을 담습니다. (웃음) 언젠가 꼭 함께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떤 배우를 꿈꾸시나요?
‘느낌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들은 보통 멋지다, 베테랑이다, 귀엽다 등등 대표적인 수식어가 붙잖아요. 그런데 ‘느낌 있는’ 배우라는 수식어는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느낌 있는' 이 단어가 매우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서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게 느낌 있는 건지 궁금하게 해서 제 작품들을 보게 만드는 마력의 단어랄까요? (웃음)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돈 많은 재벌 역할 해보고 싶습니다. 돈은 많지만 인성은 안 좋은 악역을 맡아보고 싶어요. 안하무인이고 자기 할 말 다 하면서 목소리도 큰 역할이요. 이런 역할을 맡으면 시원하게 표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peoplein_photo3


준비하거나 잠깐 휴식기를 가질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위안을 받아요. 건강한 마음에서 좋은 연기가 나오는 거라고 믿거든요. 촬영하고 연기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누적돼요. 그 누적된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어 줄 수 있는 편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 떨면서 날려 보내요.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배우 선배님들의 좋은 연기도 좋은 영향과 자극을 받지만, 연기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건 꼭 연기 뿐 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수의 멋진 무대를 보고도 연기와 접점을 찾을 수 있고, 댄서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면서 또 운동하다 만나는 자극들, 대화를 하며 얻는 힌트들, 하물며 강아지들과 놀다가도 연기에 대해 접점을 찾을 때도 있어요. 새로운 자극들에 대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배우 지망생의 길을 걸어가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지금도 어디선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꿈을 꾸고 있는 배우님들. 너무 존경합니다. 저희의 땀과 눈물은 흘린 만큼 항아리에 가득 차서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생명수가 되는 거라 확신합니다. 저도 힘든 길 함께 걸어 나가는 한 사람으로서 많이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우리 힘냅시다!! 꿈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