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코브프라

희극인에게 웃음을 묻다
개그의 미래

KBS 별관 로비에서 만난 신인 개그맨 김시우, 오정율, 채효령은
반듯하면서도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다.
조금 긴장한 표정, 정중하고 또박또박한 말투는
언뜻 개그맨보다는 사회 초년생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1050회에서 잠시 멈췄다가 1051회로 다시 시작한
<개그콘서트> 무대의 현재이자 미래인
신입 개그맨 세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KoBPRA WEBZINE vol.85 INTERVIEWER 박여진   PHOTO 백홍기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시우(이하 김): 안녕하세요. KBS 개그맨 공채 33기 김시우입니다. 늦은 나이에 개그맨으로 데뷔했습니다. 원래는 다른 일을 하다가 꿈을 포기하지 못해 늦깎이로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오정율(이하 오): 개그 콘서트에 합류하게 된 KBS 공채 33기 신인 개그맨 오정율입니다. 이름이 좀 어렵죠. ‘률’이 아니라 율무차 할 때 ‘율’입니다. ‘대한결혼만세’와 ‘숏폼 플레이’, ‘봉숭아학당’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99년생인데 개콘도 99년도에 시작되었어요. 개콘이랑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합니다.

채효령(이하 채): 안녕하세요. 저도 개그 콘서트에 합류하게 된 KBS 공채 33기 신인 개그맨 채효령입니다. 저도 이름이 좀 어려운데요, ‘최’가 아니라 ‘채소’할 때 ‘채’입니다. ‘숏폼 플레이’와 ‘킹받쥬’, ‘팩트라마’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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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맨 공채 33기 채효령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잖아요. 그런데 개그맨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채 : 학창 시절에 연기를 전공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대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생겼고요. 마침 유튜브로 스케치 코미디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개그맨분들을 많이 만났고, 친분도 많이 쌓았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제가 ‘똘’기가 있다며 개그맨이 되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사실 평소에도 주위에서 저보고 재밌다고 해주면 내면의 ‘똘’기가 폭발하는 편이거든요.(웃음) 평소 김영희 선생님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개그맨이 되었어요. *스케치 코미디: 10분 이내의 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코미디

김 : 사실 어릴 때부터 개그맨이 꿈은 아니었어요. 저는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죠.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이 일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보니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늘 웃음이 있는 순간이더라고요. 재미있는 친구들과 웃음을 주고받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그때는 주로 방청객처럼 친구들의 개그를 보곤 했는데 저도 누군가에게 저런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공채시험을 준비해 시험을 봤는데 단번에 떨어졌죠.(웃음) 이후에도 낙방과 도전이 계속 이어졌고요. 제가 끼가 많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남의 끼를 즐겁게 보던 사람에 가까워서, 내 안의 새로운 끼를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10년을 준비해서 KBS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동엽 선배님을 좋아했어요. 특유의 능청스러운 콩트 연기에 매료되어서 나도 저런 개그를 하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답니다.

오 :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어요. 주위에서 친구들이 재밌다며 개그맨 하라는 소리를 많이 했어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으쓱해서 더 친구들을 웃겨주곤 했죠. 선생님들 흉내도 내고 그랬어요.




인기가 많았겠네요.

오 : 남학생들에게만요.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어요. 제가 다가가면 피하더라고요. 요즘 말로 그걸 고백 공격이라고 한대요.(하하) 아무튼 공부로는 1등을 못 하는데 웃음으로는 제가 1등이더라고요. 그래서 일찌감치 개그맨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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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맨 공채 33기 오정율




요즘은 굉장히 다양한 방송 플랫폼들이 있지요. 그런데 개그콘서트는 어떻게 보면 모든 플랫폼 중에 가장 보수적인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있어요. 공중파 무대의 한계에 관해 듣고 싶어요. 물론 한계가 아닌 장점을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채 : 아무래도 유튜브 같은 방송보다는 제약이 많은 편이에요. 조금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심의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죠. 그래도 무대에 서다 보니 관객과 직접 소통한다는 매력도 큰 것 같아요. 관객의 웃음이 주는 에너지는 모니터 댓글창에서 받는 에너지와는 또 다르거든요. 에너지를 직접 느끼고 받을 수 있다는 게 이 무대의 큰 장점이 아닐까요?

오 : 살아 있는 무대에서 즉각 관객의 반응을 본다는 것이 장점 같아요. 열심히 짠 아이디어, 재밌는 대사에 관객이 큰 호응을 해주면 굉장히 기분이 좋죠. 물론, 반응이 없으면 방송에 못 나가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렇게 여러 아이디어와 웃음 포인트를 한 무대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개그콘서트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웃음 주상복합 아파트처럼요. 잠깐, ‘웃음 주상복합 아파트’ 이 비유 좋은 것 같은데요?(하하) 그리고 한계라기보다는 위험 요소는 신인 개그맨의 대거 참여라고 생각해요. 선배님들이 나오면 안전할 텐데 이번에 제작팀에서 과감하게 신인 크루를 많이 참여시켰어요. 검증되지 않은 개그맨이 무대에 선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크죠. 그만큼 개그콘서트도 새로워지기 위해 큰 결단을 내린 거겠죠. 이제 남은 것은 저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죠.

김 : 저도 소통과 경험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OTT에 비해 제약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너무 다 풀어놓는 개그보다는 제약 안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별화도 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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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맨 공채 33기 김시우



개그맨은 웃음을 주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 웃음을 평가받는 직업이기도 하죠.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의 피드백도 무척 날카로운 편이고요. 물론 내용 없는 악성 댓글은 논외로 하더라도 날카로운 피드백도 적지 않게 받으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채 :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좋은 댓글만 달리는 게 아니다 보니 속상할 때도 있어요. 특히 ‘왜 부활했냐’는 식의 댓글은 무척 속상하더라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좋은 평가에 위축되기보다는 자극을 더 많이 받는 편이에요. 물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서 지탱할 힘이 되고요.

오 : ‘재미없네~’하는 댓글은 뭐 그런가 보다 하는데, 한 번은 꽤 아프게 찔린 댓글도 있었어요. ‘장기 자랑하냐?’라는 댓글이었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상처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저희가 이제 감을 잡아가는 신입이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댓글들이 별점 혹은 ‘ㅋㅋㅋ’ 같은 댓글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죠.

김 : 감사하고 좋은 댓글도 있고 아픈 댓글도 있는데 큰 맥락에서 보면 모두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고, 관객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고민도 더 깊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그라는 장르의 특성상 너무 정색하고 보지 마시고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야 개그맨들도 주눅들지 않고 자유롭게 웃길 것 같아요.




“수많은 개그 전사들이 무대에 서고, 얼굴도 알리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개그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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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개그의 현재이기도 하지만 미래이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스탠딩 코미디보다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나 관찰 예능이 승승장구하는 시기에는 책임감이 더욱 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무대가 개그의 미래가 될 텐데 여러분이 꿈꾸는 미래의 개그 무대는 어떤 무대입니까?

김 : 지금은 별관에서 녹화하고 있는데,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 앞에 서고 싶습니다. 개콘 전성기 시대만큼 빛나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저희가 마지막 기수이지만 저희가 1년을 잘 꾸려서 신입 개그맨들이 더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 앞에서, 앞으로 들어올 후배 개그맨들과 멋진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 : 저는 운 좋게 시험에 합격했지만, 주위에 보면 기회를 얻지 못한 개그 전사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개그사냥>이나 <폭소클럽>처럼 개그 전사들이 설 무대도 꽤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무대가 너무 적어요. 야구도 메이저리그가 있고 마이너리그가 있듯이, 개그 무대도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수많은 개그 전사들이 무대에 서고, 얼굴도 알리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개그의 미래입니다.

채 : 조금 더 자유로운 무대를 꿈꿉니다. 문화와 시대가 바뀌면서 제약이나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찰진 표현을 써야 하는 곳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찰진 표현을 쓰고 싶어요.




이번에는 조금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질문을 할게요. 개그맨으로 먹고산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먹고 살 만한 직업인가요?

오 : 네! 예전에는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저희가 오롯이 아이디어와 무대에 집중해도 괜찮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저희가 오직 개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어요.

채 : 저도 공감해요. 선배님들도 잘 챙겨주시고, 처우도 좋다고 생각해요. 생계 걱정 많이 하지 않고 오직 무대에 집중할 수 있어서 무척 좋습니다.

오 : 선배님들이 눈만 마주치면 밥 먹었냐고들 물어보세요. 툭하면 밥 사주시고요.

김 : 저는 오랜 기간 준비를 해왔고 낙방도 많이 하다가 입사해서 그런지, 처음 제가 들었던 출연료와 지금 제가 계약한 출연료가 많이 달라진 게 실감나요.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많이 배려해주신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소속감도 더욱 많이 들고요. 선배님들 덕분에 배고플 일도 거의 없습니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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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젊은 희극인들의 말은 공연한 과장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날 바깥에는 선배들이 보낸 커피차(김성규)며 밥차(박성광)가 와 있었고, 로비에서 후배를 만난 선배 개그맨들은 한결같이 ‘밥 먹었니?’하며 물었다. 그날 게스트로 개콘을 찾은 개그맨 조혜련도 마주치는 후배마다 따뜻하게 다독이며 격려했다. 그들의 훈훈함 한 편에는 다시는 무대를 잃지 않겠다고 하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여러분은 개그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무대가 개그콘서트의 앞날을 만들겠죠. 그러려면 현재 무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는 개콘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점은 무엇이고 뼈아프더라도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오 : 개콘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건 관객의 웃음이라고 생각해요. 환하게 웃는 관객에게서 정말 빛이 나더라고요. 그 빛을 보면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아요. 관객은 정말 인간 박카스, 인간 비타오백, 인간 오로나민씨예요. 뭐 광고를 생각해서 브랜드를 언급하는 건 아닙니다.(하하) 고쳐야 할 부분은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늘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좀 더 잘할걸, 좀 더 재밌게 할 걸 하는 아쉬움이요. 요컨대, 웃음과 연기가 이 무대의 빛이자 어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말이지만 정말 멋진 말이네요!(하하)

김 : 저는 개그콘서트라는 이름이 가장 빛난다고 생각해요. 사실 개그콘서트가 부활하면서 개그콘서트2라는 이름에 대해 논의가 많았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예전의 이름을 계속 이어받았죠.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뼈아프지만 고쳐야 하는 부분은 시청자들의 질타를 대하는 저희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물론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워낙 짧고 빠른 콘텐츠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스탠딩 코미디에 만족 못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의 질타를 고민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희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채 : 아무래도 가장 빛나는 건 동경의 대상이었던 선배님들과 같은 무대에 선다는 사실 같아요. 선후배가 함께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개콘 무대가 반짝인다고 생각해요. 신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다는 점도 개콘의 빛나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고쳐야 할 점은 아까 말씀드렸던 ‘제약’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재미만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짜야 하는데 제약이 많다 보면 한계도 많거든요. 좀 더 자유로운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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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김시우, 오정율, 채효령은 분장실로, 연습실로 총총히 흩어졌다. 분주히 이동하는 그들의 뒷모습 어디에도 사회 초년생의 모습은 없었다. 오늘의 무대를 빛낼, 그리하여 미래의 개그를 빛나게 할 유쾌하고 뜨거운 에너지만 가득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