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훈 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WRITE.S vol.79
<싱어게인>은 보석 같은 프로그램이다. 월요병을 앓는 사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착한 예능’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독한 예능’의 시작이자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였던 <나는 가수다>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타이틀 효과로 인해 <나는 가수다>는 경연에서 탈락한 가수를 ‘가수도 아닌, 혹은 모자라는 가수’로 만들어버렸지만, <싱어게인>은 부제인 ‘무명가수전’답게 아직 무대를 포기하지 않은 무명 가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제공하여 ‘유명 가수’로 만드는, 일종의 ‘패자부활전’ 성격을 띤다. (‘수퍼어게인’ 찬스도 있어서, 패자부활전 속 패자부활전 장치도 있다)
신자유주의가 고도화되며 모든 것이 경쟁으로 환원되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왜곡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공개적인 ‘패자부활전’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패자부활전’이라고 하여 여기 나온 가수들을 ‘패배자’로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쟁에서 소외된 사람, 다시 말해 경쟁의 기회조차 받지 못 한 사람, 혹은 스스로 그 기회를 박차고 나온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고마운 일이다.
사회자와 심사위원들이 다른 프로그램과는 달리 참가자들을 동료 가수로 대접하고 배려하는 태도도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심사평도 재미있다. 제작진의 열린 자세도 칭찬받고 있다. 하나의 채널로만 부분적으로 공개되던 <싱어게인>에 비해 <싱어게인2>은 유튜브에 전체를 공개하고, 여러 플랫폼을 통해 모든 참가자 영상을 볼 수 있다.
<싱어게인> TOP3 이승윤, 정홍일(우), 이무진(좌) 사진출처: JTBC <싱어게인> 영상캡쳐
여러 장점 중에서도 <싱어게인>이 성공을 이끈 가장 커다란 특징을 들자면 ‘성장 서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부터 경연이란 성장 서사의 성격을 갖기 마련이다. 성장 서사의 주인공은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환경이나 악당을 극복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소설에서 볼 수 있고, 가깝게는 무협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다.
<싱어게인>은 이러한 장르적 특징을 잘 구현하며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이승윤이라는 특출한 개인은 이무진을 우군으로 만들어 경쟁을 우정과 연대로 전환하고, ‘심사위원들을 패배자’로 만들며 악당으로 치환해 버렸다. <Chitty Chitty Bang Bang>을 듣고 어리둥절하던 심사위원들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로 KO 시키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절정이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은 ‘멘토’에 가깝지 ‘악당’은 아니다. 다만 장르적으로 악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홍일이라는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판 장인(匠人) 로커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 서 있던 이승윤이 극복해야 할 훌륭한 라이벌, 일종의 안타고니스트(Antagonist)가 되어 주었다. 시청자들은 이승윤이 이러한 ‘악당’들을 극복하며 성장 스토리를 쌓아가는 걸 지켜보며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성장 서사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몇몇 특정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특정 인물 위주로 편집이 이루어진다는 비판은 부적절하다. 다만 <싱어게인2>는 장르에 걸맞은 캐릭터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싱어게인2> 참가자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윤종신이 신유미를 가리키며 언급했듯이 ‘성장형’ 가수보다는 ‘완성형’ 가수들이 계속 무대에 올랐다. 이들 사이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으면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장르나, 완전히 반대되는 음색 사이에 라이벌 구도는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겸손한 가수들과 착한 제작이 어우러지며, 그런 구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장 서사의 주인공은 ‘입체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성장을 이룬 주인공은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재능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살리에리 증후군을 암시하는 ‘배 아픈’ 가수로 자신을 소개했던 이승윤은 사실 다재다능하며, 그 누구보다 많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이선희의 말을 빌자면 ‘다양한 음악을 하는’ 가수로 밝혀진다. 자신의 음악이 ‘록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니’라는 말은 사실 록도 발라드도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이승기의 말대로 랩도 잘하는 것 같고 지나가는 말처럼 선미가 던진 ‘미친 사람 같다’는 말대로 사이키델릭 적인 요소도 있다. 한 마디로 이승윤은 다층적인 가수다. 반면 <싱어게인2>에서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인물이 부족해 보였다. 김기태는 늘 김기태 다웠고, 울랄라는 늘 울랄라 했다. 이들은 ‘완성형’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64호 가수 서기가 앳된 외모로 7080을 부르고, 예상치 못한 BTS 춤을 추기는 했지만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식은 보여주지 않았고, 7호 가수 김소연은 불사조처럼 계속 부활하며 성장 서사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노래 자체가 변하진 않았다.
<싱어게인2> 우승자 김기태 사진출처: JTBC <싱어게인> 영상캡쳐
물론 김소연이나 서기가 훌륭하지 못한 가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싱어게인2>은 <싱어게인>보다 상향평준화 되었다는 지배적인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가수들이 많았다. 다만 이승윤 같은 가수가 경연이라는 장르에 잘 들어맞고, 화제성이 더 크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승윤 같은 가수는 흔치 않고, 그가 앞으로도 이렇게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성격을 계속 보여주리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경연은 끝났고, 이제 이승윤은 ‘유명 가수’이기 때문이다. 유명 가수는 보통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의 노래를 한다. 김태원이 말했듯이 노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같이 노래하고, 노래를 만드는 사람도 똑같은 노래를 만든다. 서양음악이 틀을 갖추는 바로크 시대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바흐는 바흐 음악을 만들고, 모차르트는 모차르트 음악을 만든다. 다양한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고 비난받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했던, “우리는 커버 가수에 불과했죠”라는 말은 재고해 주었으면 한다. 이승윤을 비롯해 <싱어게인>에 참가한 모든 가수는 뛰어난 커버곡 가수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잘하는 것도 놀라운 재주다. 재즈클럽에 갈 때마다 밴드가 저작권을 방패로 삼아, 자작곡만을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듣노라면, 저작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 밴드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음악을 하는지 비교해 볼 만한 기준이 없다는 불만도 느낀다. 위대한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도 수도 없이 많은 커버곡을 연주했다. 덕분에 <Autumn Leaves>는 누가 뭐래도 캐논볼이야, 아니, 에릭 크랩튼이 최고지라며 싸우는 재미도 있지 않은가? 이승윤을 <불후의 명곡>에서 보는 것도 큰 재미다.
입체적인 인물 부재를 이유로, 성장 스토리가 없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비판하기는 힘들다. 무명가수전에 유명 가수가 출연했다는 비판도 호소력이 없다. 아무리 울랄라세션이 유명했지만,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그룹이었고,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가수였다. 하지만 울랄라의 패배를 시청자들이 흔쾌히 받아들이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음악산업은 세 개의 기둥으로 지탱된다. 팬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사(혹은 가수)이다. 팬데믹이 장기화하며 가수와 팬들의 대면 기회가 줄어들고,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보이지만, BTS의 팬덤 아미가 보여주듯이 팬덤의 영향력은 과거와는 달리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팬들은 미디어와 평론가의 평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취향을 주장한다. 최근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엔딩 논란에서도 나타났듯이 드라마 플롯에까지 개입하려 든다. 따라서 <싱어게인> 같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도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심사위원을 조금 더 전문화하고 다양화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지금과 같이 심사위원이 파이널 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라운드를 평가하는 방식도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싱어게인2> 마지막 무대에서 시청자들이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달리 윤성에게 많은 표를 몰아주며, 순위를 탑 3까지 끌어 올렸던 데서 볼 수 있듯이 심사위원과 팬들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픽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시청자들에게 맡기는 방식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먼 훗날 2020년대는 트로트의 시대라고 불릴 것 같다. 미국에서 컨트리 음악이 주류로 자리 잡는 과정을 반복이라도 하듯이, 우리나라 60~70대가 자신의 취향을 주장하면서, 트로트가 음악 프로그램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트로트 없는 음악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음악산업에서 소외되고 있는 40~50대를 위한 음악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한다.) <싱어게인>은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시청자의 비판도 염두에 두고,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는 프로그램이다. 계속 착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발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즌 100까지도 갔으면 한다.
사진출처: JTBC
임상훈
문화평론가
대중문화 평론가,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즈로 시작하는 음악 여행>을 썼고, <Good Music>,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트라우마 사전>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