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서 만난 그는 짙은 감색 정장에 깨끗한 구두, 세련된 넥타이 차림이었다.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한 권의 책 같았다. 크고 순한 눈망울과 서글서글한 미소, 따뜻한 목소리가 좋은 제목처럼 번졌다. 현우, 사도세자, 철종, 장만봉, 서재필, 이영호, 이광수, 이귀남, 강민기, 이인수, 황산해, 성찬혁, 장보고, 대조영, 무열왕 등 수많은 청춘과 왕과 장군이 그의 얼굴에 담겼다가 빠져나갔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60년을 넘게 산 사람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보이지만 않을 뿐, 그는 그 세월을 한 페이지도 누락시키지 않고 꼬박꼬박 성실하게 살았다. 그를 만나 살아온 세월 몇 페이지를 들춰보았다.
지난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 슬로건 공모 시상 및 공포식' 사진출처: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수종아, 먹고 살만 하니?’
‘네.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합니다.’ 그랬더니
‘그럼 악역 안 해도 지장 없겠네.’ 하셨어요.
‘상관없습니다.’ 하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그 선배님이 선배로서 그리고 시청자로서 수종씨가 사회에 주는 좋은 영향력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로써의 능력과 자질은 충분하지만 나쁜 역할로 이미지 변신 안 했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악역 제안이 정말 많이 들어오는데 전부 사양했어요. 제가 연기를 통해 세상에 뭔가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방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요.
인터뷰 전 준비 시간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인터뷰를 마친 후 추가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내내 정중하고 따뜻하고 쾌활했다. 함박눈처럼 펑펑 울고, 폭죽처럼 환하게 웃는 사람. 한 여자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처음 사랑을 고백하듯 눈이 반짝이는 사람, 빈난했던 삶도 신문지 한 장으로 따뜻하게 데우던 사람, 최수종이 채워나갈 나머지 삶의 페이지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