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잘 지키던 단정한 학생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무수한 어머니로 그리고 다시 정혜선으로
배우 정혜선은 이십 대의 싱그러움을 모두 가린 채 우리에게 왔다. 검은 머리에 하얀 칠을 하고, 얼굴에 주름을 그려 넣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젊음의 기색을 모두 가린 채 오직 배우의 모습으로. 인터뷰를 위해 정혜선 배우를 찾아갔을 때, 그는 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어머니 정혜선과 바로 눈앞에서 카랑카랑한 발성으로 연극 연습을 하는 정혜선의 외모는 거의 오차 없이 동일했다. 다만 분장으로 젊음을 가려야 했던 그때와 달리 아름답게 굽이치는 흰 머리와 지혜로운 주름이 표정 따라 일렁이는 진짜 그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만 달라져 있었다. 그는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대본을 읽고 노래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옷보다 더 푸르렀다.
연극 <넝쿨채 굴러온 당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하고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주관하는 ‘낭만콘서트 청춘극장’에 포함된 프로그램이다. 정혜선 외에 배우 양재성, 박칠용, 김정하가 출연하고, 유승봉씨가 연출을 맡았다. 지난 8월 2일 전남 강진을 시작으로 포천, 아산, 성주, 태백, 해남에서 공연되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세월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말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그 말은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낸 현자가 불안과 걱정에 잔뜩 움츠린 우리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위로였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건성으로 흘려보내곤 하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좋은 위로. 푸른색 옷처럼 매 순간을 푸르게 살아가는 배우 정혜선의 세월이 흘러가며 보여줄 모습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