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OTT가 허문
다양한 경계들
글로벌, 장르, 리메이크, 유통까지 OTT가 만든 변화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vol.87

바야흐로 OTT의 시대다. 콘텐츠 소비 방식의 대변화를 불러 일으킨 OTT는 또한 콘텐츠 산업 전반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배우는 물론이고 제작자, 제작형태, 유통 등등, OTT의 등장으로 인해 그간의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 입성한 이정재

최근 디즈니+가 공개한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에 이정재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현재의 글로벌화된 콘텐츠 시장의 상징적인 사건처럼 보인다. ‘스타워즈’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다양한 별의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에 대한 서사를 내포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982년 첫 방영된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을 보면 어딘가 서부극의 우주버전 같은 느낌이 강하다. 백인 남성 중심의 영웅 서사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 여러 시리즈로 탄생하면서 세상도 바뀌었다. 전 세계가 디지털로 연결된 글로벌 시대로 들어왔고 다양성에 대한 요구들도 많아졌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여성 주인공을 세운 것이 성별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면, ‘애콜라이트’는 인종적 다양성을 담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스타워즈’는 영어권 백인들만이 아닌 전 세계가 즐기는 시리즈가 됐고, 따라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이정재가 주연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정재가 캐스팅된 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의 영향을 빼놓고 말할 수 없고, 또 ‘오징어 게임’이 그런 성과를 낸 데는 넷플릭스라는 OTT의 영향력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OTT가 만들어낸 새로운 글로벌 환경이 이정재라는 한국배우가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 이처럼 OTT는 그간 배우들에게는 장벽처럼 여겨졌던 글로벌과 로컬의 경계를 너무나 간단하게 허물어버렸다.

이제 배우들은 과거처럼 글로벌 진출을 위해 헐리우드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오징어 게임’으로 첫 연기를 선보인 모델 출신 정호연은 이 기회 하나로 글로벌 스타가 됐고, ‘스위트홈’의 송강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의 윤찬영 같은 배우들은 신인급이지만 OTT를 통해 다수의 해외 팬을 확보한 배우가 됐다. ‘더 글로리’의 송혜교나 ‘킹덤’의 주지훈, ‘무빙’의 한효주, 조인성, 이정하, 고윤정도 마찬가지다. 또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 남미, 유럽으로까지 퍼져나가는 K로맨스의 힘은 ‘눈물의 여왕’의 김수현과 김지원이나 최근 화제가 됐던 ‘선재 업고 튀어’의 변우석, 김혜윤을 순식간에 글로벌 스타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처럼 OTT는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 놓인 경계를 없애줌으로써 배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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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시리즈 <에콜라이트> © 디즈니+

OTT가 불러온 새로운 제작방식

이러한 변화는 배우들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최근 박찬욱 감독이 연출, 각본은 물론이고 전체 시리즈의 쇼러너로 참여한 시리즈 ‘동조자’를 보면 OTT가 불러온 달라진 제작방식의 양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베트남계 미국인인 비엣타인 응우옌이 써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이 원작이다. 그런데 미국의 제작사 A24가 제작했고 HBO가 투자한 작품으로 베트남 배우 호아 위산더와 미국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한국계 미국배우 산드라 오 등의 다국적 배우들이 참여했다. 제작 참여인력 구성 자체가 글로벌하게 이뤄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글로벌 협업은 현재 K콘텐츠업계에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가 출연한 한국영화 ‘브로커’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사례나, 일본의 유명 만화인 ‘기생수’를 연상호 감독이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스핀오프 시리즈로 제작한 ‘기생수: 더 그레이’ 같은 작품들이 모두 이 글로벌 협업이 보편화되고 있는 현 시대의 변화를 말해준다.

특히 최근 들어 일본과 국내 콘텐츠업계의 협업이 급증해 공동 투자는 물론이고 제작에 이어 배우들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일본 TBS에서 방영되어 일본 내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일본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여기 출연한 한국배우 채종협은 이른바 ‘횹사마 열풍’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특히 드라마 분야의 경우 일본은 산업규모가 큰 반면, 콘텐츠면에서 느린 성장을 보여왔다. 최근 몇 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보인 K드라마와 일본 콘텐츠업계가 손을 잡고 아시아는 물론이고 글로벌을 겨냥한 작품을 내놓으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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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삼촌> © 디즈니+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할 시기

OTT는 이밖에도 콘텐츠 제작환경에 다양한 변화들을 불러 일으켰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때 영화라는 테두리 안에만 있던 제작인력들은 이제 드라마 영역으로도 들어오고 있다. 최근 ‘더 에이트 쇼’ 같은 드라마를 내놓은 한재림 감독이나, ‘삼식이 삼촌’을 내놓은 신연식 감독, ‘부산행’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지옥’ 같은 드라마를 넘나드는 연상호 감독처럼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제작인력의 이동은 감독에서부터 작가, 스텝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흐름이 됐다. 당연히 영화 인력의 드라마로의 이동은 K드라마의 장르적 폭도 넓혀 놓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글로벌 OTT의 높은 제작비 투자가 밑바탕이 된 것이지만, 영화인들의 성향들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판타지나 SF 같은 그간 드라마가 잘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들이 시도되고 있는 건 그래서다.

OTT는 또한 콘텐츠 유통 방식에도 대변혁을 불러오고 있다.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식이 깨져버렸고, 그래서 극장 역시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영화만이 아닌 팬덤 문화의 공간으로 변모하려는 움직임 또한 보이고 있다. 또 OTT 초창기만 하더라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독점 콘텐츠 유통으로 구독자를 끌어모으려던 흐름은 최근 들어 OTT와 방송사가 동시에 콘텐츠를 선보이는 협업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일만큼, 확보한 구독자를 유지시키는 것 또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OTT의 등장이 불러온 변화는 사실상 콘텐츠 산업 전체에 해당될 만큼 전방위적이다. K콘텐츠는 일단 이 변화에 가장 발빠르게 동승해 짧은 기간 동안 글로벌 입지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그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가며 이를 기회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자칫 재주만 부리고 실익은 얻지 못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어서다. 최근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는 한국영상실연자권리협회로 협회명 변경을 준비 중이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 역시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방송’이라는 한정된 단어만으로는 OTT 시대의 경계가 해체된 ‘영상’의 영역을 모두 커버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종사하는 모든 실연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바람직한 조치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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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