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D.P>에 이어 ENA <신병>, 영화 <육사오> 까지 최근 군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연이어 나왔다. 특히 <D.P>는 신드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큰 이슈가 되었다. 성인 남자 등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로 인식된 군대 소재가 대중화 되었다는 점도 주목을 받았지만, 더 주목을 받았던 점은 바로 군필자도 인정한 ‘리얼리티’에 있었다. 군대 소재의 작품에서 리얼리티를 구사하는 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파트 중 하나가 바로 의상인 군복이다. 앞서 언급된 <D.P>, <신병>, <육사오>를 비롯 수많은 군대 소재의 작품에 참여하며, 오랜기간 작품의 리얼리티를 입히고 있는 특수의상 ‘메탈자켓’ 이윤정 대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윤정 대표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특수의상, 주로 군복과 소품을 담당하고 있는 메탈자켓 공동대표 이윤정입니다.
메탈자켓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메탈자켓은 남편인 설용근 대표와 함께 만든 회사에요. 주로 군복, 경찰복 등 특수의상과 특수복 관련 액세서리, 총기류 같은 소품 등을 모두 작업하고 있습니다. 설 대표는 저보다 3년 먼저 일을 시작했고요, 메탈자켓을 만들고 나서 첫 작품이 <퇴마록>이었으니까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네요.
특수의상은 대부분 작품의 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서, 현장에서는 ‘메탈자켓 실장님’이라고 많이들 부르셨어요. 그런데 최근 드라마 <신병>과 영화 <육사오>에서는 극중 군복이 메인 의상이 되어서 ‘의상실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참여하신 작품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일을 시작한지도 20년이 넘고, 보통 1년에 20작품 이상을 진행하다보니 어떤 작품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어렵네요.(웃음)
드라마는 최근 ENA <신병>과 넷플릭스 <D.P>에 참여했어요. 이 두 작품은 지금 시즌2 촬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외 드라마 KBS <태양의 후예>, KBS <아이리스> 그리고 영화 <서울의 봄>, <공조>, <데시벨>, <백두산>, <한반도>, <베테랑>, <강력3반>, <JSA>, <쉬리> 등이 있습니다.
최근 참여작품인 <D.P>, <신병>, <육사오> 포스터
일년에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 보통 하나의 작품이 준비되고 촬영될 때까지, 어떤 과정으로 통해 의상 작업이 진행되나요?
특수의상 파트는 <신병>처럼 군복이 메인의상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작품 속 의상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러편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일이 많을 때는 일년동안 집에서 지낸 시간보다 촬영장 숙소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어요. 심지어 같은 촬영장 숙소에서 지내는데도 함께 일하는 남편을 자주 못 볼때도 있었어요.
작품 컨셉 미팅은 주로 후반에 결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픽스된 시나리오와 상황을 감독님과 함께 분석하면서 의상과 사용될 소품에 대해 꼼꼼하게 의논하면서 준비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전 미팅에서는 필요한 의상과 소품의 리얼리티에 중점을 많이 두는 편이에요.
특수의상은 일반의상에 비해 컨셉의 방향이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네, 아무래도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사실적 고증이 컨셉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죠. 사극 의상에 비해 스팩트럼은 훨씬 짧지만, 그래도 70년대 군복과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찾아 연구해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의상과 소품은 사전에 제작을 해 놓기도 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예전에는 군복 소재가 주로 면이었다면 요즘은 기능성 원단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전처럼 구겨지지 않아 다림질을 할 필요도 없고, 먼지도 훨씬 덜 타죠. 패턴도 예전은 민무늬나 얼룩무늬였다면 요즘은 디지털 프린트(도트)에요. 물론 소재는 작품상에서 크게 티가 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작업하면 작품의 세밀한 리얼리티를 만들때 기준이 되고 이런 사소한 차이가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객관적 고증 자료를 구하기 힘들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럴 때는 관련 종사자 분들이나 지인들을 통하여 자문을 받기도 합니다.
한 번은 교도소 관련 의상을 준비할 때였는데 접근이 힘들어서 교도관님들과 수차례 통화를 한 적도 있어요. 감사하게도 최대한 자세히 알려주셨고 모르시는 부분은 직접 제소자를 통해 정보를 주시기도 하셨어요. 작품 속 작은 소품, 스쳐지나가는 의상이라고 할지라도, 실제 그 직책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는 금방 티가 나는 편이거든요.
군복, 제복의 경우 일반 의상에 비해 협찬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상과 소품은 어떻게 준비가 되나요? 이와 관련된 에피스도도 들려주세요.
네, 맞아요. 특수의상들은 일반 의상에 비해 협찬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때가 많죠. 그래서 7,80년대와 같은 시대별 특수의상은 시간이 될 때마다 미리 자료를 수집해서 새로 제작을 하고, 요즘 의상이나 악세사리는 인터넷과 각종 자료집의 사진을 통해 제작해서 준비하는 편입니다. 다행히 남편인 설 대표에게 옛날 소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요. 덕분에 그렇게 모아둔 소품이 큰 도움이 될 때가 많았어요.
간혹 촬영 현장에서 예고없이 의상 컨셉이 바뀌는 경우가 있어요. 다행히 준비해 온 의상 중에 바뀐 컨셉을 충당할 의상이 있거나 촬영장과 작업실이 가까울 때는 빨리 해결을 하는데, 가장 난감한 경우는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구하러 갈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요.
그래서 정말 급할 때는 근처에 있는 경찰서, 파출소, 소방서로 달려갈 경우가 있어요. 사정 이야기를 하면 감사하게도 대부분 잘 협조를 해주세요. 물론 저의 신분증을 잠시 맡겨두고서. (웃음)
협업하신 배우 중에 기억에 남는 실연자가 있을까요?
박원상 배우님이 늘 기억나요.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촬영장이 꽤 힘든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늘 웃어주시고, 스탭들을 알뜰살뜰 챙겨주셨어요.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낸 동지애가 있어서인지, 이후에도 오며가며 늘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힘을 주셨어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연기자 분들이 함께 일하는 스탭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아, 최근 <육사오> 촬영 때 함께 했던 음문석 배우님도 생각나네요.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셨어요.
음문석 배우와 함께(위) <D.P> 촬영 후 배우 손석구 배우와 함께. 맨 왼쪽이 메탈자켓 설용근 공동대표.(아래)
대표님이 보시기에 군복이 가장 잘 어울렸던 연기자는 누구일까요?
잘생겼다고 해서 다 잘 어울리지는 않으신건 같아요.(웃음) 대부분 슈트가 잘 어울리시는 분은 군복도 꽤 소화를 잘 하시는 편이에요. 제 기억에 유난히 많이 남았던 분은 <태양의 후예>에 나오셨던 김지원 배우님이세요. 당시 극중 해외 파병 군인의 의상을 베이지 바탕의 컨셉으로 준비를 했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던 군복과 컬러도 다르고 느낌도 많이 달라서 사실 조금 걱정하긴 했거든요. 그래도 이왕 준비했으니 한번 피팅을 하고 결정하자라고 생각하고 김지원 님이 입으셨는데 너무나도 완벽하게 잘 어울리셨어요. 그래서인지 주위 반응도 좋아서 그대로 진행이 되었던 기억이 있어요.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으시죠?
현장 스탭들은 아마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해요. 특히 미술파트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휴식 시간, 수면 시간이 늘 부족한데 또 그에 반해 처우가 적은 편이기도 하죠. 많은 스탭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각자 맡은 역할에 완벽해지고 싶어하거든요. 저도 작업하면서 고증에 어긋나거나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에 반해 제작일정은 늘 타이트하게 잡히는 편이에요. 준비기간과 사전 확인 작업이 좀 더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진행된다면 저의 힘듦이 작은 보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저는 작품을 준비하고 참여할 때마다 이번 작품이 후대에 좋은 자료가 되고 고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하는 편입니다. 그러면 작은 일이라도 더 소중하고 심도있게 임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이런 마음이 저를 20년 넘게 이 길을 걷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배우들에 대한 신뢰도 크구요.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남편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함께 했기에 지금까지 가능했던 것 같아요. (웃음)
촬영 현장 스케치. 좌측 하단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채 대본 점검을 하고 있는 이윤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