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한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기획운영팀장
KoBPRA WEBZINE WRITE.S vol.86
협회는 협회원이 출연한 방송프로그램이 재사용될 때 사용료를 징수한다. 이것이 협회 신탁관리 징수 업무의 원칙이다. 그런데 그 재사용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형태가 매우 다양하여 간혹 해당 사례가 정산의 대상인지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해석이란 주관적이기 마련이므로 사용료를 납부하는 사업자는 가능한 한 사용료의 지급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자 하고, 반대로 협회는 그 범위를 넓게 해석하고자 하여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그중 하나의 사례를 살펴본다.
유튜브에 선공개된 디지털콘텐츠
방송사의 유튜브 채널 전략이 본격화된 이후로 방송콘텐츠의 이용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전에는 방송콘텐츠를 재방송하거나 FULL VOD를 제공하는 데 그쳤던 것이 10분 이내의 일부 분량만 편집되어 유통되거나, 특정한 테마를 중심으로 여러 프로그램의 일부가 뒤섞이거나, 심지어는 유튜브에 먼저 공개된 뒤에 그것을 이어 붙여 방송에 편성하기도 하는 등 날이 갈수록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유튜브에 먼저 공개된 뒤에 그것을 이어 붙여 방송에 편성된 사례를 둘러싸고 협회와 어느 방송사가 의견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방송사의 실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는 ‘유튜브에 먼저 업로드한 뒤에 방송이 이루어진 프로그램’은 협약서상 정산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다음 협약서의 정의 조항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프로그램’이란 ‘방송사’가 ‘제작’하는 아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말한다.
‘본방송’이란 ‘방송사’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을 말한다.
주장의 요지는 ‘방송사가 제작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써 방송사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그 프로그램을 재방송하여야만 사용료를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닌 디지털콘텐츠로 제작된 것이고, 유튜브에서 먼저 공개되었으니 방송사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방송프로그램의 유통경로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다루어야 할 시의적절한 주제를 제시한 셈이었다. 유튜브를 통한 공중송신은 ‘방송’이 아니라 ‘전송’에 해당하므로 예리한 지적이었다.
협회의 회신
그러나 해당 주장을 협회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협회는 다음을 근거로 해당 프로그램을 정산에 포함하여야 한다고 회신하였다.
첫째 방송프로그램과 디지털콘텐츠의 구분은 해당 영상저작물이 유통되는 미디어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온라인동영상플랫폼에서 디지털콘텐츠로 유통되었던 영상저작물이라고 할지라도 방송에 편성되면 그것은 방송프로그램이라고 보아야 한다. 방송법 또한 무엇이든 방송 편성의 단위가 되는 내용물이라면 방송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하였다.
둘째 계약서상 본방송은 여타의 사업자가 아닌 해당 방송사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을 말하며, 그 전에 전송이 되거나 복제가 되는지는 본방송의 해석과 무관하다. 방송사가 유튜브에 선공개(전송)하였더라도 그것은 저작권법상 방송이 아니므로, 이후에 해당 영상저작물을 방송하면 그것이 본방송이 된다.
셋째 해당 프로그램은 유튜브에 선공개한 여러 영상을 재편집하여 제작한 것인데,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1997. 6. 10. 선고 96도2856 판결)에 따르면 영상저작물을 본래의 창작물로서 이용하는 것이 아닌 이용은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의 적용범위 밖에 있으므로 그 이용에 대해서는 실연자의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된다. 즉 방송사의 주장대로 해당 영상이 전송을 목적으로 제작된 디지털콘텐츠라면, 해당 영상의 방송에 대하여서는 협회가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다.
이후 몇 차례 응답이 오간 끝에 방송사는 해당 프로그램을 정산의 대상에 포함하기로 합의하였다. 방송사가 오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한 덕분이었다.
협의의 중요성
위의 사례에서는 방송사가 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나, 모든 방송사가 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산업에는 “저작권 사용료는 가능하면 주지 않는 것이 좋고, 만약 주게 된다면 최대한 적게 줄수록 좋다.”는 오래된 격언이 전해진다. 만일 방송사가 이 격언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한다면, 실무적인 차원에서 계약서를 해석하는 방식으로는 의견을 조율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타당한 해석의 문제는 실리적 협상의 본격적인 문제로 전이된다.
협상에서는 설득과 협의, 때로는 논쟁이 오가기 마련이다. 혹자는 권리자를 대신하여 이용자와 싸우는 것이 저작권 신탁관리단체 본연의 역할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방송사와 협회가 체결하는 특약은 법률상의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웹진 방송실연자 제84호, 〈특약의 의미〉 참조 → 기사원문 바로가기), 논쟁이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협회는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현행 저작권법상 방송사가 ‘특약 없음(=사용료 지급 전면거부)’을 선포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협회는 저작권법의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과격한 논쟁을 지양할 수밖에 없다.
《손자병법》이 말하는 최상의 병법이란,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고 한다. 비록 그 결과가 승리에 이를지라도 싸움은 그 자체로 언제나 출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굴복’이라는 표현이 다소 노골적이지만, 협회와 방송사의 저작인접권 협상에서 굴복이란 ‘설득과 협의에 따른 의견의 합치’로 읽을 수 있다. 타당한 해석과 치밀한 논리, 나아가 인간적 감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업자로서도 과격한 논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분쟁비용을 일으키는 것보다 원활한 협의를 통하여 합리적인 범위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무리
협회와 방송사의 협의는 방송사가 우리 회원의 실연을 재사용하였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대전제를 충족하는 논리는 힘이 있다. 원활히 이용하되 그에 대해 보상하라는 것이다. 회원의 실연을 재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의 맹점을 악용하여 보상하지 않는다면 단기적으로는 지출을 절감할 수 있겠으나 이는 영상창작자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법론에 힘을 실어주는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러한 사례가 모여 입법의 필요성이 임계점을 지난다면, 협회도 ‘법 앞에서(before the law)’ 번거로운 설득을 그만두고 ‘법 안으로(within the law)’ 들어가서 강력한 권리를 행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