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장기
국제연대로
넷플릭스에 맞서다
법과 협상의 틈에서 찾은 국제 보호 체계 구축 확인
강이서  정책기획팀

Kobpra Webzine Vol.93

지난해 5월 창립된 국제시청각연맹 Global Audiovisual Alliance, GAVA (이하 ‘GAVA’) 의 첫 대면 총회가 런던에서 열렸다. 총회 참석도 의미가 있었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영국배우노동조합 Equity 과 영국실연자권리협회 BECS 를 만나 넷플릭스 대응 전략을 논의하고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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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배우노동조합: 거대한 공룡 앞에서

런던에 도착한 다음 날, 영국에서 가장 먼저 만난 단체는 영국배우노동조합이였다. 영국배우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서 넷플릭스와 직접 계약을 협상하는 주체다. 영국에서 법정보상금은 영국실연자권리협회가 관리하고, 계약을 통한 사용료는 영국배우노동조합이 관리한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점은, 영국에서 넷플릭스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주체가 영국실연자권리협회가 아닌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영국배우노동조합과의 만남은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이미 경험한 실질적 파트너를 찾는 과정이었다.

미팅에서 가장 활발한 대화가 오간 주제는 넷플릭스의 위협이었다.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인수 소식이 알려진 직후라 그들의 파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영국배우노동조합의 영화 및 텔레비전 부문 총괄 캐시 스위트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넷플릭스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면서 IP를 포함한 모든 권리를 가져갑니다. 더 큰 문제는 기존 관행을 따르지 않고 항상 자신들만의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영국에는 미국영화·텔레비전제작사연맹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 와 유사한 PACT라는 제작사 연합이 있고, BBC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Equity는 오랫동안 PACT와 협상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고 2차 사용료를 징수해왔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영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넷플릭스는 PACT를 통한 계약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직접 협상하겠다고 나섰죠. PACT 계약이 오래된 형태라 최신 시장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PACT 계약을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조건들을 반영한 별도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우리는 내년 3월 이후 한국의 배우노동조합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이 넷플릭스와 협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며, 영국배우노동조합의 조언을 구했다. 캐시 스위트의 답변이 이어졌다. “우리도 미국배우조합 SAG-AFTRA 의 계약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closed shop 형태의 노동조합입니다. 조합의 힘이 아주 강하고, 파업도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의 현실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했죠.”

이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법적·제도적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는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6년, 국제연대의 해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캐시 스위트는 중요한 정보를 공유했다. 내년에 넷플릭스와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보다 높은 보호 수준을 위해 많은 것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배우조합도 내년 넷플릭스와의 계약 갱신이 예정되어 있고, 한국도 3월 이후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26년은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와 실연자 단체들이 대면하는 해가 될 것이다.

거대한 공룡 같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협력하면 좋겠다는 우리의 제안에 영국배우노동조합은 매우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자신들의 계약서도 공유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전략적 동맹을 맺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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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S: 법적 공백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다

다음 날 오전, 영국실연자권리협회를 방문했다. 출장을 준비하는 초기 단계에서 영국실연자권리협회와의 만남 목적은 상호관리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국실연자권리협회의 설명은 예상과 달랐다. 영국 역시 시청각 실연자에게 보상청구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아 계약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은 EU 대여권 지침에 따라 시청각 실연자의 대여권을 영상제작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하되, 대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여권 이외의 권리에 대해서는 당사자 간 자유로운 계약에 맡겨져 있어, 집중관리의 대상이 되는 보상청구권이 없는 것이다. 한국 역시 저작권법상 실연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하지만 영상저작물 특례조항으로 인해 그러한 권리가 제작자에게 양도되는 점에서 영국과 한국의 상황이 매우 유사했다. 법적으로 권리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작자에게 넘어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양국 모두 공백을 안고 있었다.

영국배우노동조합이 넷플릭스와 협상에 성공해 계약을 체결하긴 했지만, 이는 노동조합의 교섭력에 기반한 것이지 법정보상청구권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결국 영국과 한국 모두 현재로서는 시청각 실연자에 대한 보상청구권이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호관리계약이 아닌, 향후를 대비한 기본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어느 한쪽에 법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즉시 협력할 수 있는 틀을 사전에 구축하는 것이다. 기본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법적 기반이 마련되는 순간 국제 협력이 신속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어서 영국실연자권리협회는 많은 나라의 단체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우리가 최근 한국의 법 체계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자 기꺼이 도움을 제안했다. 다른 단체들과의 만남이나 협력을 주선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국제 네트워크가 주는 실질적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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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A 총회: 단단한 연대

같은 날 오후, GAVA 첫 대면 총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영국 BECS, 스페인 AISGE, 네덜란드 NORMA, 스위스 SWISSPERFORM, 슬로베니아 AIPA, 그리스 DIONYSOS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우리가 현장에 참석했고, 온라인으로 많은 단체가 함께했다.

총회에서는 올해 GAVA의 활동을 점검하고 내년도 예산과 실행 계획을 논의했다. 각자 다른 법 체계 아래에 있지만, 실연자의 권익 증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필요하다면 안건을 조정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연대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성숙한 논의 과정이었다.

총회 말미에는 스위스 SWISSPERFORM과 슬로베니아 AIPA 담당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특히 AIPA의 피터는 과거 한국의 영화감독조합 DGK 과 협력했던 경험이 있다며 한국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2년 전 슬로베니아의 저작권법을 개정해 보상청구권을 도입했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도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감독, 작가를 비롯한 창작자들과 연대하고 있다고 공유하자 피터는 그 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로 합의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법안을 통과시키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 보상청구권이 도입된다 해도 이 역시 출발점일 뿐이다. 그 법이 실질적인 보호수단이 되려면 창작자들 간의 연대, 국제 협력,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런던에서의 나흘은 짧았지만 밀도가 높았다. 영국배우노동조합은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주었고, 영국실연자권리협회는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동료가 되어주었으며, GAVA 회원 단체들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2026년은 영국도, 한국도 모두 넷플릭스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각자의 싸움이지만, 동시에 함께하는 싸움이다. 1만 6천여 회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국제연대를 강화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