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칼럼
생성형 인공지능의 합성 실연

조병한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정책기획팀장

Kobpra Webzine Vol.93

할리우드의 틸리 노우드

영상제작사 파티클6의 프로듀서 엘린 반 데르 벨덴 Eline Van der Velden 은 지난 9월 취리히 영화제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가상의 캐릭터 ‘틸리 노우드’ Tilly Norwood 를 소개하였다. 전 세계의 언론은 즉각 ‘AI 여배우 actress ’의 등장이라며 떠들썩하게 소식을 전하였고, 할리우드의 연기자 커뮤니티는 즉각 반발하였다. 미국배우조합 SAG-AFTRA 은 “틸리 노우드는 배우 actor 가 아니며, 수많은 배우의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며 “스튜디오가 합성 실연을 사용하기 위하여서는 조합에 그 사실을 통지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1 미국배우조합은 미국영화TV제작자연맹 AMPTP 를 상대로 ‘합성 실연을 이용할 경우 조합에 사전 통지하고 협상을 하여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2023년 할리우드 파업의 성과이다.

할리우드가 크게 반발하자 틸리 노우드는 한발 물러섰다. 반 데르 벨덴은 틸리 노우드가 AI 장르의 배우에 불과하다며 일반 영화산업이나 방송산업에서 활동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실제 틸리 노우드는 여러 영화에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모든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틸리 노우드의 프로듀서 반 데르 벨덴 본인도 여러 작품에 출연하였던 배우이자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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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실연의
두 가지 종류

시청각실연 분야에서는 생성형 AI 기술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특정한 인간 배우를 모델로 하는 디지털 레플리카 digital repelica , 둘째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 인물의 실연장면을 제작하는 합성 실연 synthetic performance 이다. 디지털 레플리카의 경우 명확한 모델이 존재하므로 그 모델에게 허락을 구하여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성 실연의 경우에는 문제가 조금 복잡하다. 합성 실연은 특정 모델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허락을 구하여야 할 대상이 모호한 까닭이다. 틸리 노우드의 사례도 합성 실연에 해당한다.

합성 실연은 방대한 분량의 인간 실연과 초상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데, 인공지능 개발사가 개개 실연자에게 일일이 실연 이용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는 저작권 신탁관리단체인 우리 협회가 합성 실연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인간 실연의 이용을 허락하고, 그에 대한 사용료를 징수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협회가 합성 실연에 대한 사용료의 수준을 일반적인 인간 실연에 대한 대가보다 높게 설정하여 경제적인 이유로 인간을 대체하는 형태의 인공지능 이용을 제한하고, 징수한 사용료를 협회원 전체에게 적정한 방식으로 분배한다면 인간 실연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이용허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의 방식이 잘 작동하기 위하여서는 현실의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건이란 합성 실연의 현실적인 쓸모이다. 인간 실연자를 고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보다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여 합성 실연을 이용할 필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합성 실연이 인간의 실연을 단순히 대체하는 용도 이외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합성 실연을 제작할 동기가 발생할 것이다.

AI 합성 실연의 쓸모

그간 인간 실연자와 공생의 관계를 이루었던 사례가 콘텐츠산업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애니메이션산업의 캐릭터가 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산업 내에서 인간의 실연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과 별개로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였다. 캐릭터는 실재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인간 고유의 매력을 지닐 수는 없지만, 이른바 ‘휴먼 리스크’가 없고, 장기적인 라이센싱 비즈니스에 용이하다는 측면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미키마우스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백설공주가 노환으로 별세하였다면 지금처럼 디즈니랜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발히 활용하는 대다수 창작자는 “인공지능이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고 말한다. 앞으로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인공지능만의 독창적인 영역에서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팬덤을 형성하여 별개의 산업을 이룬다면, 애니메이션산업이 그러하였듯 인간의 실연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산업과 공존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정이용의 문제

일각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개발사가 일일이 저작권 이용허락을 받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저작권법의 ‘공정이용’ 제도의 문을 넓히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학습에 실연을 이용하는 것이 공정이용으로 인정된다면 인공지능 개발사는 실연자의 동의를 받을 필요도, 실연자에게 보상을 지급할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인간 실연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구현한 합성 실연은 이용에 아무런 제약이 없으므로, 인간 실연을 대체하는 용도로 마구잡이로 활용될 것이다. 그 결과 직업적 ‘연기자’는 소멸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기술의 진흥을 도모하는 측에서는 지금이 AI 강국으로 도약할 ‘골든 타임’이라며 저작권법을 신속히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논리의 기저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개인의 권리는 뒤로 미루어도 된다는 식의 섬뜩한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실연을 공정하게 이용하기 위하여서는 권리자에게 적정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할 것이다. 학습용 데이터의 방대한 분량을 고려하면 보상 과정에서 저작권 신탁관리단체의 역할은 필수불가결하다. 저작권 신탁관리단체의 협상당사자로서 적격성을 따지자면 저작권법이 정한 저작권 신탁관리업자의 요건(제105조 제2항 제1호)이 새삼스럽다. 2 공정한 제도가 뒷받침한다면 저작권 신탁관리단체는 보상의 수준을 적정하게 협상함으로써 인간의 저작물과 인공지능의 생성물이 상생하는 공정한 콘텐츠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https://www.sagaftra.org/sag-aftra-statement-synthetic-performer

2. 저작권법 제105조 제2항 제1호 저작물등에 관한 권리자로 구성된 단체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