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칼럼
여성성을 전복하라,
사이코패스 여성캐릭터들의 등장
차라리 악을 선택한 여성 캐릭터들, 왜 이렇게 많아졌나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Vol.93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최근 범죄스릴러에나 나올 법한 인격장애를 가진 여성 캐릭터들이 부쩍 늘었다. 그것도 악역이 아닌 여자 주인공 캐릭터다. 무엇이 이들에게 차라리 악을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캔디는 가라,
이제 사이코/소시오패스다

김은숙 작가의 <다 이루어질지니>는 마술램프 속 지니와 기가영(수지)이라는 한 여성의 수천 년에 얽힌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 기가영이라는 인물이 예사롭지 않다. 평범한 멜로에는 걸맞지 않는 사이코패스다. 그럼에도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지니 이블리스(김우빈)는 기가영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와 인간의 사랑. 지니가 모든 걸 주도할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욕망 자체가 없는 사이코패스 기가영 앞에서 지니는 오히려 끌려다닌다. 그 많던 실장님, 대표님 같은 현대판 왕자님을 넘어 이제 뭐든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 등장하지만, 그 현대판 왕자님에 의해 이끌리던 캔디나 신데렐라는 없다. 멜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이코패스 여성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탄생하게 된 주도권의 전복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의 위치는 오래도록 ‘인내’와 ‘희생’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다. 멜로의 전형적인 여성 주인공 역시 캔디형의 수동적이고 낙천적인 인물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전형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 이루어질지니>의 사이코패스 여주인공 기가영이 그렇고, <친애하는 X>의 백아진(김유정), <자백의 대가>의 모은(김고은) 같은 캐릭터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선이나 여성성 같은, 세상이 여성들에게 부여하는 전형적인 시각을 전복시키려는 듯 보인다. 그래서 대신 악을 선택하고 여성성의 족쇄를 벗어버리려 한다.

과거 드라마들에서 악녀란 주로 남성 주인공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질투나 치정 같은 사적인 감정에 의해 탄생했다. 하지만 현재의 사이코/소시오패스 여성 캐릭터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가련한 존재가 아니다. 대신 자신의 목적과 성공을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족쇄들을 부수고, 나아가 목표를 위해서는 주변인물들까지 이용하는 냉정한 포식자다. 어찌 보면 악당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이런 면모들은 지금껏 그려진 여성상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왜 이들이 악을 선택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그 전형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성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혹은 가련한 피해자로만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이, 그런 여성상을 당연시했던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이 아닌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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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TVING

이들이 악을 선택한 이유

사이코/소시오패스 캐릭터의 특징이 그러하듯, 이들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감정의 결여’를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개구리의 배를 아무런 감정 없이 가르는 인물이고(기가영), 죽어가는 엄마가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매몰차게 이를 거부하는 인물이며(백아진), 잔혹하게 한 부부를 독살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모은)이다. 이들 감정이 결여된 인물들의 등장이 말해주는 건 반대로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는 여성’이라는 틀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사적인 감정의 틀을 벗어나면 이들의 행동과 선택은 보다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기가영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그 감정의 결여를 통해 오히려 드러내는 역설적인 캐릭터다. 욕망에 휘둘려 파멸해가는 인간군상을 보며 비웃던 지니는 감정이 없어 욕망도 없는 기가영에게 매혹된다. 물론 감정의 결여가 범죄로 가지 않게 된 건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할머니와 마을사람들)의 따뜻한 가르침이 있어서다. 즉 감정의 유무가 선악을 나누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믿음 속에서 감정적인 건 선이고 그래서 여성은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그 고정관념을 기가영은 여지없이 깨뜨린다.

<친애하는 X>의 백아진은 감정이 없는 기가영과는 달리, 자신의 본성을 완벽한 가면 뒤에 숨긴 채 사회적 성공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향해 연기하는 소시오패스다. 물론 그녀가 괴물이 된 건 학대받으며 자라오면서 끝없이 버림받지 않기 위해 했던 몸부림의 결과였다. 결국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주변 인물을 이용한다. 그래서 성공의 정점에까지 오르지만 그 끝은 공허하다. 그럼에도 이 소시오패스 캐릭터가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건 사회가 요구하는 청순함 같은 여성성을 오히려 성공을 위해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성적인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잔혹한 이빨을 숨기고 있는 반전이 주는 카타르시스랄까.

<자백의 대가>의 모은은 ‘피해자’라는 틀에 가둬지곤 하던 여성의 모습을 깨는 인물이다. 잔혹한 살인에도 죄의식을 보이지 않는 그녀를 세상은 ‘마녀’라 부르지만, 그녀가 그렇게 된 건 과거 끔찍한 가족에게 닥친 비극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절망적인 비극 앞에 그저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다. 대신 사이코패스 같은 잔혹하고 치밀한 복수를 선택한다. 그녀의 짧게 민 머리와 눈물 따위는 결코 보이지 않는 모습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시스템이 만들어내곤 하던 눈물짓는 피해자의 상을 부수고 대신 사적 정의를 집행하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여성성,
착한 여자 프레임으로부터의 탈피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는 착하고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성의 프레임에 오래도록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이 틀을 벗어난 악녀들은 대부분 드라마에서 무너뜨려야 할 빌런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이코/소시오패스 여성 캐릭터들은 더 이상 빌런이 아니다. 그들은 주체적인 선택을 한 인물들로서, 오히려 그들이 악을 선택하게 한 현실을 꼬집는다.

기가영의 욕설은 여성들에게 ‘언어적 순결성’을 요구하는 사회를 걷어차는 카타르시스이고, 백아진이 주변 인물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해 이용하는 모습은 늘 조종당하던 여성들로만 그려지던 걸 답답하게 바라보던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해방감이다. 모은의 과감한 복수극은 늘 피해자로만 그려지던 여성들의 세상에 대한 항변이다. 이들은 그저 악녀가 아니라 그간 한국드라마가 유지해왔던 여성상을 재정의하는 인물들이다.

이제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던 착한 여자 프레임에 대중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대중은 더 이상 무해하고 순진하기만 한 여자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뒤집으며 승리를 쟁취해가는 인물에 매료된다. 이러한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은 여성 연기자들에게는 특히 보다 넓은 연기 영역을 확장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성성이란 이름으로 뻔한 틀에 머물러 잠들어 있던 역할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다.

columnWriter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