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모든 걸 집어삼키는 글로벌 플랫폼의 시대
넷플릭스라는 블랙홀
한정훈   ㅣ k엔터테크허브 대표

KoBPRA WEBZINE Vol.91

넷플릭스는 극장에서 외면받던 영화가 사흘 만에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지상파에서 망한 드라마가 글로벌 톱10에 오르는 현상을 만들고 있다. 더 놀라운 건 2025년 5월, 스트리밍이 역사상 처음으로 지상파와 케이블TV를 합친 시청률(미국)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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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bout.netflix.com/en/news/ripple-effect-k-content-viewers-embracing-korean-culture ©넷플릭스

스트리밍 역사의 분수령:
전통 TV를 넘어선 순간

2025년 5월은 TV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 닐슨의 ‘더 게이지 The Gauge ’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44.8%의 TV 시청 점유율을 기록하며 지상파(20.1%)와 케이블(24.1%)을 합친 44.2%를 역사상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이는 4년 전인 2021년 5월과 비교하면 스트리밍 이용량이 71% 증가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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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ielsen.com/news-center/2025/streaming-reaches-historic-tv-milestone-eclipses-combined-broadcast-and-cable-viewing-for-first-time/ ©Nielsen

넷플릭스는 이 변화의 핵심 주역이다. 4년 연속 구독형 동영상 서비스 SVOD 1위를 유지하며, 2021년 5월 대비 시청률이 27% 증가했다. 2024년 크리스마스 데이에 두 개의 NFL 독점 중계로 스트리밍 역사상 최대 시청일을 기록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효과’도 입증됐다. 다른 플랫폼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넷플릭스로 이동하면서 더 큰 인기를 얻는 현상이다. 2025년 5월 톱 스트리밍 타이틀인 <너의 모든 것 YOU >(40억 분 시청)가 대표적 사례다. <슈츠 SUITS >, <영 셸든 young Sheldon > 등도 넷플릭스를 통해 재조명받았다.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정복기

2025년 6월 27일, 전 세계 3억 명 넘는 시청자들과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동시에 <오징어 게임> 시즌 3를 시청했다. 시즌 1은 여전히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2024년 12월 26일 공개된 시즌 2는 넷플릭스 역대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수를 기록했다. 이정재, 이병헌 등 주연 배우들은 할리우드 스타 못지않은 인지도를 얻었고, 이들이 출연한 작품은 넷플릭스 주가까지 흔들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25년 상반기에는 아이유·박보검 주연의 <폭싹 속았수다>와 연상호 감독의 <계시록>이 공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고, 특히 <폭싹 속았수다>는 또 한 번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을 견인했다. 김은숙 작가의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도 올해 4분기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오징어게임> 이후 K콘텐츠의 글로벌 OTT 편성과 수요도 크게 늘었다. 패럿애널리틱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 공급 트렌드(2015-2024)’ 데이터는 오징어게임이 만든 변화의 규모를 명확히 보여준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던 한국 콘텐츠 공급 지수는 2021년 오징어게임 출시 이후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공급 지수가 2021년을 기점으로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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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럿애널리틱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글로벌 인기 한국 작품들’의 분포 변화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타임라인을 보면, 오징어게임 이전과 이후의 콘텐츠 생태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7년 <미스터 션샤인> , 2019년 <반도> 등이 단발적 성공작이었다면, 2021년 오징어게임 이후에는 <지금 우리학교는>, <비상선언>,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글로벌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패럿애널리틱스 데이터에 따르면, 오징어게임 이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관심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수치였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투자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5년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투자 규모는 8,000억 원을 넘으며, 2016년 한국 진출 이후 누적 투자액은 1조 원을 돌파했다.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수도 2018년 4개에서 2025년 32개로, 8배 증가했다. 글로벌 조사 업체 암페어에 따르면 최근(2023~2025년)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 전체 시청 시간에서 미국에 이어 2위, 비영어권 콘텐츠 중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시청 시간 점유율은 8~9%로 영국(7~8%), 일본(4~5%)을 앞서고 있다.

극장에서 스트리밍으로:
유통 혁명의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로 바로 가는 영화도 늘고 있다. <승리호>, <카터> 같은 초기 사례 이후, 이제는 대작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선택한다. 극장가에서 제작비 회수의 불확실성이 커진 게 이유다. 넷플릭스의 선매입이나 직접 투자는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고, 전 세계 3억 명이 넘는 구독자에게 동시 노출되는 건 극장으로는 불가능한 기회다.

넷플릭스에서는 지상파에서 망한 드라마가 글로벌 히트를 하고, 극장에서 조용히 사라진 영화가 몇 년 후 재평가받는 일이 일상이다. 편성 시간대 제약이 없고, 알고리즘 추천과 소셜 미디어 서비스 바이럴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성공 공식이 만들어졌다. 과거엔 시청률과 박스오피스가 절대적 지표였지만, 이제는 넷플릭스 순위와 글로벌 시청 시간이 새로운 척도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극장 생태계에 치명타다. 대작 영화들이 극장을 거쳐 가지 않으면서 극장가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특히 중소 규모 극장들의 폐업이 잇따르고 있어, 영화 관람의 문화적 경험 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토종 스트리밍의
치열한 생존 경쟁

2025년 3월, 쿠팡플레이는 748만 명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를 기록하며 705만 명의 티빙을 제치고 토종 OTT 1위 자리에 올랐다. 웨이브는 439만 명으로 3위를 차지했으나, 순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 스트리밍 시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빠르게 판도가 변화하고 있다. 티빙은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독점 중계권 확보로 시청층을 넓혔으며, 20대 여성 시청자가 20%에 달하고, 프로야구 개막전 주말 시청 시간이 전년 대비 130% 증가하는 등 스포츠 콘텐츠의 파급력을 입증했다. 쿠팡플레이 역시 스포츠 중계에 집중해 이용자의 19%가 스포츠를 시청할 정도로 스포츠 팬층을 공략하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을 준비 중이다. 만약 합병이 성사되면 MAU 1,000만 명 이상의 국내 최대 OTT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합병 시점에서 점유율이 34%에 달해 넷플릭스(35%)와의 격차를 1%p로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합병의 목적은 넷플릭스와 경쟁을 위해서다. 한국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그동안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실제로 티빙과 웨이브는 최근 몇 년간 영업손실이 누적되고 있으며, 콘텐츠 투자 부담이 커지면서 재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넷플릭스를 따라잡으려다 모두 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국내 OTT 서비스들은 생존을 위해 스포츠 중계, 오리지널 콘텐츠, 제휴, 합병, 무료화 등 다양한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지만, 넷플릭스의 막대한 자본력과 글로벌 시장 규모 앞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위치에 있다.

실연자들의 기로:
기회와 도전의 딜레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이 늘면서 배우들의 출연 기회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연기력과 언어 능력이 필수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요구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배급 시스템은 초상권과 저작인접권 관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의 계약 조건이 기존 방송사보다 불리한 경우가 많고, 글로벌 배급으로 인한 수익 배분 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신인 배우들은 협상력이 약해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2025년 하반기 전망:
변화의 가속페달

넷플릭스 광고 기반 요금제가 본격화하면서 시장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2025년 5월 기준 넷플릭스의 광고 요금제 가입자는 전 세계 9,4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가 5,5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됐다.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의 55%가 광고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으며, 지상파와 케이블TV의 광고 시장에 직접적 타격이 예상된다. 넷플릭스는 6월 18일 프랑스 방송사 TF1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넷플릭스 구독자가 플랫폼 내에서 TF1의 게임쇼, 라이브 스포츠,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스트리밍과 전통 방송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결론:
기회 뒤에 숨은 그림자

넷플릭스라는 블랙홀은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극장, 지상파, OTT 모두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 콘텐츠는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위상을 높였지만, 실연자 권익 보호, 공정한 수익 배분, 문화 다양성 확보라는 과제도 남아 있다. 더 큰 우려는 플랫폼 종속의 위험성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투자를 줄이거나 정책을 바꾸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넷플릭스의 갑작스러운 투자 중단으로 제작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알고리즘 중심의 콘텐츠 소비가 확산하면서 다양성과 실험성이 줄어들 위험도 있다. 글로벌 어필을 위해 획일화된 콘텐츠만 양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5년 하반기는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블랙홀의 중력에 휩쓸려 사라지느냐, 아니면 그 에너지를 이용해 더 높이 도약하느냐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그 선택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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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
www.kentertechhub.com
JTBC 등에서 미디어 전문 기자로 23년을 일했다. 현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현장 취재를 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테크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오디언스를 불러오는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