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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5 미국 출장기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미국배우조합과의 만남
유태웅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상임이사
KoBPRA WEBZINE Vol.91

1만 6천여 명 회원의 권리를 위한 LA행이었다.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우리 미디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즈음부터
우리 협회는 넷플릭스에 협상을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 답변도 돌아오지 않는 동안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처음으로 유의미한 응답이 있었다.
미국배우조합 SAG-AFTRA 을 통하여 협상을 요구하자 발생한 일이다.
국제적 연대의 힘을 실감했다.
우리 협회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부랴부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미국배우조합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인 ‘미국배우조합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2년 영화배우조합 SAG 과 미국 텔레비전·라디오방송인조합 AFTRA 이 통합해 출범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적 노동조합이다.
한국의 상황에 비춰보자면,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역할을
한 단체가 동시에 수행하는 셈이다.
회원의 권리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한 조직 내에서 수행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1만 6천여 명 회원의 권리를 위한 LA행이었다.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우리 미디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즈음부터 우리 협회는 넷플릭스에 협상을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 답변도 돌아오지 않는 동안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처음으로 유의미한 응답이 있었다. 미국배우조합 SAG-AFTRA 을 통하여 협상을 요구하자 발생한 일이다. 국제적 연대의 힘을 실감했다. 우리 협회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부랴부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미국배우조합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인 ‘미국배우조합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2년 영화배우조합 SAG 과 미국 텔레비전·라디오방송인조합 AFTRA 이 통합해 출범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적 노동조합이다. 한국의 상황에 비춰보자면,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역할을 한 단체가 동시에 수행하는 셈이다. 회원의 권리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한 조직 내에서 수행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역설적인 현실:
법이 있어도 권리가 없고, 법이 없어도 권리가 있다

회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한미 양국의 상반되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경우 법은 없지만 권리는 강하다. 우리와 달리 미국의 저작권법에는 실연자의 저작인접권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배우조합은 제작자와 창작자 사이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계약을 통해 막강한 권리를 지켜왔다고 한다.


던컨 크랩트리-아일랜드 전무이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저작권법상 권리가 없지만, 단체교섭을 통해 재상영보상금 residuals 을 징수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내 유통뿐만 아니라 해외 사용분까지 포함한다”


반면 한국 저작권법엔 실연자의 저작인접권이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도리어 그 법이 실연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특약이 없는 한 모든 권리는 영상 제작자에게 양도된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저작권법 제100조 제3항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등은 우리 협회와 특약을 맺어왔기 때문에 그동안 협회가 회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OTT 플랫폼은 특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는 앞서 언급하였듯 협약을 맺기는커녕, 아예 협상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다. 한국 저작권법에 따르면, 특약을 맺지 않은 실연자에겐 권리가 없으므로 플랫폼 입장에서는 사용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저작권법을 들어 협상조차 응하지 않고 있는 넷플릭스는 정작 저작권법이 저작인접권을 지켜주지 않는 미국에선 미국배우조합과 협상과 계약을 통해 16만 명의 조합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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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vs 법적 강제:
어느 것이 더 강한가?

미국배우조합이 제작사와의 신뢰를 토대로 현재의 계약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수많은 실패와 희생이 축적된 경험이 그 바탕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미국배우조합이 강력한 교섭력을 만들어낸 배경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답한 크랩트리-아일랜드 전무이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계약조건은 오랜 역사에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이미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노동법이 개정되기 전인 1950년 이전까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창작자를 강제로 노동조합에 가입시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엔터테인먼트 현장에는 ‘창작활동을 시작하면 창작자 조합에 당연히 가입한다’라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는 크랩트리-아일랜드 전무이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늘날 미국배우조합의 가입 정책은 주(州)별로 차이를 두고 있다. 캘리포니아·뉴욕 등 일부 주에서는 ‘조합에 가입하지 않아도 조합비는 내야 한다’라는 형태 agency shop 으로 운영하지만, 조지아·플로리다·텍사스 등 다른 주에서는 이런 식의 강제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크랩트리-아일랜드 전무이사는 “조합 가입이 현장에서 당연시되기 때문에 미국배우조합은 조합원 유치보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사람의 가입 신청을 막는 쪽으로 더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사정은 처음부터 사뭇 달랐다. 우리 노동조합법은 1963년 제정 이래 조합에 강제로 가입하도록 한 제도 closed shop을 허용한 적이 없다. 현행 노동조합법 또한 “특정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제81조). 창작자 조합이 노동조합 지위를 어렵게 인정받더라도, ‘조합 가입을 취업규칙에 반영하라’고 사업자에게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 영상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미국처럼 당사자 간 협상을 통해 보상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력한 이해관계자들 또한 여기에 지지를 보낸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한국과 미국 노동조합 사(史)의 근본적인 차이를 간과한 주장이다. 수십 년 동안 노동조합 강제가입이 가능했던 역사가 미국 노동조합의 강력한 협상력을 만들어내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국엔 아예 존재한 적도 없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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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
미국배우조합의 중재

여러 번 강조했듯 넷플릭스는 수년간 수십 차례 이어진 우리 협회의 협상 요청을 모두 묵살했다.
미국배우조합을 통해 만남을 제안하자 드디어 답변이 왔다.


“대선 이후 정국이 안정되면 넷플릭스 코리아를 통해 협상 창구를 마련하겠다.”


더욱 놀라운 것은 크랩트리-아일랜드 전무이사의 약속이었다.


“우리는 넷플릭스 협상 테이블을 비롯하여
한국의 두 단체가 배우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사업자가 글로벌 환경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으므로, 한국의 두 단체가 우리를 위해 나서줄 일도 있을 것이다.”


이번 만남이 일회성으로 끝날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전략적 동반관계의 첫걸음이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출장을 준비하던 중에도 미국배우조합이 넷플릭스에 연락하여 한국에서 협상이 시작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형 모델의
필요성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가 미국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미국은 1933년 국가산업부흥법 NIRA,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 이후 1950년 이전까지 조합 강제가입이 가능했던 역사가 있고, 한국은 처음부터 그것이 불가능했다. 출발점이 다르다.


저작권법이 미비한데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교섭력만을 바탕으로 영상물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사례는 미국을 제외하면 매우 드물다. 따라서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한 보상 체계를 만들기 위해선 창작자 조합의 교섭력을 북돋울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먼저 필요하다.


미국배우조합은 우리와 만남에 오후 시간을 통째로 할애하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양국의 제도적 차이는 컸지만,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과 개선 의지에는 공감을 나눴다. 상호 협상력을 높인 새로운 구조를 만들도록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자고 뜻을 모았다.

변화의 시작


미국배우조합은 우리 협회 및 한국연기자노동조합과의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하루빨리 넷플릭스가 우리 협회와 특약을 통해
1만 6천여 실연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회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우리는 함께할 때 더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