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10년이다. 그동안 영상시장은 격세지감이란 표현으로는 그 변화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애프터 넷플릭스>에서 언급한 ‘대관식’이란 단어도 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넷플릭스가 있다. 그러나 정작 넷플릭스의
의견을 물어보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도 할 말이 있을 것이지만, 속내를 드러내진 않는다.
그래서 넷플릭스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 보았다. 이 과정은 우리의 입장에서 넷플릭스의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작가라면,
배우라면, 방송사라면, 그리고 제작사라면 넷플릭스의 생각에 동의할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이를 고민하면서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글을 읽어 보길
권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기만 했는데, 요즘 들어 별소리를 참 많이 들어. 하도
제작비가 우리 때문에 올랐다고 해서 일정 정도 이상의 배우 출연료 상한선을 정해
주기까지 했잖아.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거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소 자원에
대한 값은 증가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도 하도 우리 잘못이라고 하니까 이렇게라도
성의를 표하는 거야. 립서비스면 어때? 그런 립서비스라도 해 달라는 거잖아. 갈수록
그래. 아마 2016년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곧 10주년이 되잖아. 그러니 더더욱 그러겠지.
마치 우리가 한국 시장을 다 집어삼켰다는 등 별의별 소리를 다 하겠지. 우리가 판을 좀
흔들기 했어. 근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항상 시장은 새로운 것들이 들어와서 기존
사업자와 부딪히면서 갔던 거잖아. 우리는 열심히 했고, 그들은 대응을 잘못한 것뿐인데,
그걸 우리 탓이라고만 하면 웃기지. 우리도 할 말이 많아. 속내라고 생각하고 한번 들어
봐봐.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제작사들?
알아서 온 거지, 우리가 뭐 멱살이라도 잡았나
많은 제작사가 우리한테 오긴 했어.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불공정을 해 가면서 제작사를
꼬신 게 아니잖아? 우리가 무슨 짓을 했더라? 아, 그냥 ‘계약서대로 돈 드립니다. 만드는
데만 신경 쓰세요.’ 이 한마디 했어. 그랬더니 다들 줄을 서더라고. 왜 그랬겠어? 우리가
아니었으면 한한령으로 인한 피해를 한국 제작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뻔했잖아. 더구나
당신들끼리 있을 땐 돈은 돈대로 안 주고, 갑질은 갑질대로 하고. 그런 데서 구르다가
숨통 트이는 곳을 보니 눈이 돌아간 거지. 우리가 무슨 대단한 수를 쓴 게 아니라고.
우리도 콘텐츠가 필요했으니, 더구나 후발주자니, 제값 주고 거기에 이윤을 조금 챙겨줬을
뿐이야. 후발주자로서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거 아냐?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했을 뿐이지.
그랬더니 알아서 다들 오더라고. 얼마나 너네들이 비정상이었으면 이렇게 찾아왔을까?
미국 안 그랬어. 일본도 안 그랬고. 다들 우리랑 연 있는 사람들 찾았던 것 기억 안 나?
그놈의 생태계 타령.
재미없으면 안 보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우리 때문에 시장이 붕괴된다고? 당신들이 애지중지하던 그 ‘생태계’ 말이야. 그거,
솔직히 좀 지겹지 않니? 맨날 똑같은 배우에 똑같은 이야기. 장르물은 거의 없고, 로맨틱
코미디 아니면 신파. 스스로 돈이 안 된다고 대하사극 같은 것도 포기했었잖아. 그런데
우린 어땠어. 한국 시장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다양한 작품들을 했잖아. 우리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어. 창작자들에게 자유를 준 거라고. 괜찮은 시나리오인지만을 판단했을
뿐이야.
한때는 너네들도 그랬잖아. 넷플릭스 참 선구안이 없다고 말야. 그랬는데, 그 장르물이
하나둘씩 사람들을 움직인 거잖아. 우리는 그냥 사람들한테 선택지를 좀 넓혀준 것뿐이야.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게 말이지. 그랬더니 시청률 0%짜리가 우리 앱에선
1등을 해? 그게 뭘 뜻하겠어. 당신들이 그런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지 않아?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N-Screen 서비스를 내놓았을 때도 뭐 이런저런 제약을 붙여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했던 건 기억 안 나? 우리는 안 그랬잖아. 아주 단순해. 재미있는 것
만들게 했고, 편하게 보게 했고 그러니 사람들이 모인 거지. 그걸 가지고 ‘파괴’니 뭐니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유럽 등에서 쿼터제 등등 도입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이야기 잘 하지 않잖아. 왜냐고? 우리가 유럽식 쿼터제에 대한 투자보다 한국에서 우리가
더 많이 투자하니까? 왜 다들 지들 아픈 것만 이야기하는지.
월드 스타?
우리가 만들어준 거 맞는데, 뭘 그리 삐딱하게 봐
얼마 전에 우리 덕에 한국이 많이 알려졌다고 했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듣긴 했어.
근데 틀린 말은 아니잖아. 우리 때문에 당신들 배우들, 감독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
하나로 인생들이 바뀌었잖아. 맞잖아. 근데 그게 뭐? 배 아픈가? 우리가 판 깔아줬으면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시건방 떤다’고?
허. 그럼, 뭐 우리가 없었어도 갑자기 뉴욕 한복판에서 K-드라마 얘기를 했을 것 같아?
디즈니 플러스에 있는 한국 콘텐츠가 이렇게 대접받은 것 봤어? 아니잖아. 우리가 가진 게
글로벌 플랫폼이고, 거기에 얹었더니 터진 거야. 간단한 거잖아. 이걸 가지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땡큐’ 하고 즐기면 되는 일을.
돈 얘기?
비즈니스가 장난인 줄 아나
최근에 우리가 제작비 정산 방식을 조금 바꾸었어. 제작비에 맞추어 비율로 제작비를
챙겨주었더니 자꾸 제작비를 부풀려서 오는 거야. 그래서 정액을 지불하고 그 안에서
제작비를 챙기든 말든 하는 식으로 조금 바꿔 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거지.
그랬더니, 언제는 이윤 챙겨 준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그러냐고 징징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아, 언제까지 퍼 주기만 할 줄 알았나? 처음엔 시장 키우려고 화끈하게 쏜 거지. 근데
이제 당신들 몸값도 오를 대로 올랐고, 판도 커졌잖아. 그럼, 우리도 계산기 두드려봐야
하는 거 아냐? 적당히 벌었으면 됐지, 무슨 우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리스크는 우리가
다 짊어지는데, 이익은 끝도 없이 나눠달라? 세상에 그런 비즈니스가 어디 있나.
이제 정신 차리고 현실적으로 가자고.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거야. 근데 잘 판단하라고?
SBS도 다 넘어왔잖아. 조만간 우리 천하가 될 거야. 그날 되면 이전에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거든. 더구나 니네들 정부도 FTA 이야기만 하면 쏙 들어가잖아.
그러니 잘 판단해.
그리고 솔직히,
어떤 요구들은 좀 웃기다
근데 진짜 이해 안 가는 게 몇 개 있어. 망 사용료? 하! 우리가 당신들 돈 아껴주려고
서버까지 직접 박아줬더니, 돈을 더 내라고? 이거 완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니야?
그리고 창작자들한테 돈을 더 줘야 한다는 얘기. 이미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돈을
받았잖아. 우리가 수백억짜리 도박을 할 때, 당신들은 안전하게 자기 몫 다 챙겼다고.
근데 이제 와서 대박 났으니까 더 내놓으라고? 길 가다가 로또 당첨된 사람한테 “그거
내가 판 거니까 반 내놔”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제발 부탁인데, 뭔 요구를 하려면 숫자 좀 들고 와서 이야기해 봐.
손해를 봤으면 얼마를 손해 봤는지 이야기해서 설득 좀 하라고. 숫자는 하나도 들고 오지
않으면서 맨날 요구만 해. 우리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길게 이야기했더니 입만 아프다. 그만 좀 징징대.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는 그 파도를
만든 것뿐이야. 당신들은 그 위에서 서핑할지, 아니면 허우적대다 가라앉을지 선택해야
하고. 우리가 보기엔 아직도 허우적대는 걸로 보이는데. 뭐, 알아서들 하라고. 우리는
우리 갈 길 갈 테니까. 뒤처지기 싫으면 바짝 따라오든가.
자 이제 마무리를 할게. 난 열심히 했을 뿐이야. 내가 아쉬운 것이라면 넷플릭스 HQ에
한국 투자를 지금보다 더 많이 해 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러려면 조금
더 분발해 줬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아시아 시장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해 주는 건
고맙지만, 각 국가에서 오리지널을 만들고 있는 만큼 조금 더 분발해 줘야 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반응을 보이는 콘텐츠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러니 같이 분발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