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넷플릭스가 한국에게 보내는 메시지
우린,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조영신  ㅣ 미디어산업평론가 겸 동국대학교 대우교수

KoBPRA WEBZINE Vol.91

넷플릭스 10년이다. 그동안 영상시장은 격세지감이란 표현으로는 그 변화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애프터 넷플릭스>에서 언급한 ‘대관식’이란 단어도 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넷플릭스가 있다. 그러나 정작 넷플릭스의 의견을 물어보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도 할 말이 있을 것이지만, 속내를 드러내진 않는다. 그래서 넷플릭스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 보았다. 이 과정은 우리의 입장에서 넷플릭스의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작가라면, 배우라면, 방송사라면, 그리고 제작사라면 넷플릭스의 생각에 동의할까?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이를 고민하면서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글을 읽어 보길 권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기만 했는데, 요즘 들어 별소리를 참 많이 들어. 하도 제작비가 우리 때문에 올랐다고 해서 일정 정도 이상의 배우 출연료 상한선을 정해 주기까지 했잖아.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거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소 자원에 대한 값은 증가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도 하도 우리 잘못이라고 하니까 이렇게라도 성의를 표하는 거야. 립서비스면 어때? 그런 립서비스라도 해 달라는 거잖아. 갈수록 그래. 아마 2016년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곧 10주년이 되잖아. 그러니 더더욱 그러겠지. 마치 우리가 한국 시장을 다 집어삼켰다는 등 별의별 소리를 다 하겠지. 우리가 판을 좀 흔들기 했어. 근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항상 시장은 새로운 것들이 들어와서 기존 사업자와 부딪히면서 갔던 거잖아. 우리는 열심히 했고, 그들은 대응을 잘못한 것뿐인데, 그걸 우리 탓이라고만 하면 웃기지. 우리도 할 말이 많아. 속내라고 생각하고 한번 들어 봐봐.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제작사들?
알아서 온 거지, 우리가 뭐 멱살이라도 잡았나

많은 제작사가 우리한테 오긴 했어.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불공정을 해 가면서 제작사를 꼬신 게 아니잖아? 우리가 무슨 짓을 했더라? 아, 그냥 ‘계약서대로 돈 드립니다. 만드는 데만 신경 쓰세요.’ 이 한마디 했어. 그랬더니 다들 줄을 서더라고. 왜 그랬겠어? 우리가 아니었으면 한한령으로 인한 피해를 한국 제작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뻔했잖아. 더구나 당신들끼리 있을 땐 돈은 돈대로 안 주고, 갑질은 갑질대로 하고. 그런 데서 구르다가 숨통 트이는 곳을 보니 눈이 돌아간 거지. 우리가 무슨 대단한 수를 쓴 게 아니라고. 우리도 콘텐츠가 필요했으니, 더구나 후발주자니, 제값 주고 거기에 이윤을 조금 챙겨줬을 뿐이야. 후발주자로서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거 아냐?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했을 뿐이지. 그랬더니 알아서 다들 오더라고. 얼마나 너네들이 비정상이었으면 이렇게 찾아왔을까? 미국 안 그랬어. 일본도 안 그랬고. 다들 우리랑 연 있는 사람들 찾았던 것 기억 안 나?

그놈의 생태계 타령.
재미없으면 안 보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우리 때문에 시장이 붕괴된다고? 당신들이 애지중지하던 그 ‘생태계’ 말이야. 그거, 솔직히 좀 지겹지 않니? 맨날 똑같은 배우에 똑같은 이야기. 장르물은 거의 없고, 로맨틱 코미디 아니면 신파. 스스로 돈이 안 된다고 대하사극 같은 것도 포기했었잖아. 그런데 우린 어땠어. 한국 시장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다양한 작품들을 했잖아. 우리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어. 창작자들에게 자유를 준 거라고. 괜찮은 시나리오인지만을 판단했을 뿐이야.
한때는 너네들도 그랬잖아. 넷플릭스 참 선구안이 없다고 말야. 그랬는데, 그 장르물이 하나둘씩 사람들을 움직인 거잖아. 우리는 그냥 사람들한테 선택지를 좀 넓혀준 것뿐이야.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게 말이지. 그랬더니 시청률 0%짜리가 우리 앱에선 1등을 해? 그게 뭘 뜻하겠어. 당신들이 그런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지 않아?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N-Screen 서비스를 내놓았을 때도 뭐 이런저런 제약을 붙여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했던 건 기억 안 나? 우리는 안 그랬잖아. 아주 단순해. 재미있는 것 만들게 했고, 편하게 보게 했고 그러니 사람들이 모인 거지. 그걸 가지고 ‘파괴’니 뭐니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유럽 등에서 쿼터제 등등 도입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이야기 잘 하지 않잖아. 왜냐고? 우리가 유럽식 쿼터제에 대한 투자보다 한국에서 우리가 더 많이 투자하니까? 왜 다들 지들 아픈 것만 이야기하는지.

월드 스타?
우리가 만들어준 거 맞는데, 뭘 그리 삐딱하게 봐

얼마 전에 우리 덕에 한국이 많이 알려졌다고 했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듣긴 했어. 근데 틀린 말은 아니잖아. 우리 때문에 당신들 배우들, 감독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 하나로 인생들이 바뀌었잖아. 맞잖아. 근데 그게 뭐? 배 아픈가? 우리가 판 깔아줬으면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시건방 떤다’고?
허. 그럼, 뭐 우리가 없었어도 갑자기 뉴욕 한복판에서 K-드라마 얘기를 했을 것 같아? 디즈니 플러스에 있는 한국 콘텐츠가 이렇게 대접받은 것 봤어? 아니잖아. 우리가 가진 게 글로벌 플랫폼이고, 거기에 얹었더니 터진 거야. 간단한 거잖아. 이걸 가지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땡큐’ 하고 즐기면 되는 일을.

돈 얘기?
비즈니스가 장난인 줄 아나

최근에 우리가 제작비 정산 방식을 조금 바꾸었어. 제작비에 맞추어 비율로 제작비를 챙겨주었더니 자꾸 제작비를 부풀려서 오는 거야. 그래서 정액을 지불하고 그 안에서 제작비를 챙기든 말든 하는 식으로 조금 바꿔 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거지. 그랬더니, 언제는 이윤 챙겨 준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그러냐고 징징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아, 언제까지 퍼 주기만 할 줄 알았나? 처음엔 시장 키우려고 화끈하게 쏜 거지. 근데 이제 당신들 몸값도 오를 대로 올랐고, 판도 커졌잖아. 그럼, 우리도 계산기 두드려봐야 하는 거 아냐? 적당히 벌었으면 됐지, 무슨 우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리스크는 우리가 다 짊어지는데, 이익은 끝도 없이 나눠달라? 세상에 그런 비즈니스가 어디 있나.
이제 정신 차리고 현실적으로 가자고.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거야. 근데 잘 판단하라고? SBS도 다 넘어왔잖아. 조만간 우리 천하가 될 거야. 그날 되면 이전에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거든. 더구나 니네들 정부도 FTA 이야기만 하면 쏙 들어가잖아. 그러니 잘 판단해.

그리고 솔직히,
어떤 요구들은 좀 웃기다

근데 진짜 이해 안 가는 게 몇 개 있어. 망 사용료? 하! 우리가 당신들 돈 아껴주려고 서버까지 직접 박아줬더니, 돈을 더 내라고? 이거 완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니야?
그리고 창작자들한테 돈을 더 줘야 한다는 얘기. 이미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돈을 받았잖아. 우리가 수백억짜리 도박을 할 때, 당신들은 안전하게 자기 몫 다 챙겼다고. 근데 이제 와서 대박 났으니까 더 내놓으라고? 길 가다가 로또 당첨된 사람한테 “그거 내가 판 거니까 반 내놔”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제발 부탁인데, 뭔 요구를 하려면 숫자 좀 들고 와서 이야기해 봐. 손해를 봤으면 얼마를 손해 봤는지 이야기해서 설득 좀 하라고. 숫자는 하나도 들고 오지 않으면서 맨날 요구만 해. 우리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길게 이야기했더니 입만 아프다. 그만 좀 징징대.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는 그 파도를 만든 것뿐이야. 당신들은 그 위에서 서핑할지, 아니면 허우적대다 가라앉을지 선택해야 하고. 우리가 보기엔 아직도 허우적대는 걸로 보이는데. 뭐, 알아서들 하라고. 우리는 우리 갈 길 갈 테니까. 뒤처지기 싫으면 바짝 따라오든가.

자 이제 마무리를 할게. 난 열심히 했을 뿐이야. 내가 아쉬운 것이라면 넷플릭스 HQ에 한국 투자를 지금보다 더 많이 해 달라고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러려면 조금 더 분발해 줬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아시아 시장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해 주는 건 고맙지만, 각 국가에서 오리지널을 만들고 있는 만큼 조금 더 분발해 줘야 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반응을 보이는 콘텐츠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러니 같이 분발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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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미디어산업평론가 겸 동국대학교 대우교수
미디어, ICT 산업 및 콘텐츠 비즈니스 전문가로 기업, 기관, 학계를 아우르며 급변하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과 콘텐츠 비즈니스의 생태계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SK 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과 SK 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방송학회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애프터 넷플릭스>와 <AI와 레거시 콘텐츠 산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