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의 벽과 IP 프랜차이즈라는 기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보여 준 IP '보유'와 '활용'의 거리
드라마 한 편의 회당 제작비가 수십억 원에 이르는 시대다. 제작비는 해마다 치솟는데 방영권 판매와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사업 모델로는 더 이상 투하된 자본을 온전히 회수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텐츠 산업이 주목하는 해법이 콘텐츠 IP의 활용, 이른바 IP 프랜차이즈다. 하나의 IP를 시즌제와 스핀오프, 리메이크, 웹툰, 뮤지컬, 게임, 상품화 등으로 확장하여 부가 가치를 다각도로 창출하고, 그 수익으로 다시 후속 창작에 투자하는 선순환을 만들자는 것이다.
IP 프랜차이즈의 모범은 단연 디즈니다. 디즈니는 하나의 IP를 영화에서 테마파크로, 상품으로, 후속작으로 끊임없이 순환시키며 개별 작품의 성패를 뛰어넘는 프랜차이즈의 가치를 구축하였다. 개별 작품은 흥행에 실패할 수 있어도 잘 구축된 프랜차이즈는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 높아진 제작비를 감당할 답이 IP 프랜차이즈에 있다는 기대는 여기에서 비롯한다.
국내에서 IP 프랜차이즈에 대한 기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사례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다.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보장하는 안정적인 마진을 마다하고 국내외에 방영권만을 판매하는 길을 택했다. IP를 보유하기 위해서였다. 작품이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선택은 옳았던 것처럼 보였다. 웹툰 연재, 뮤지컬 제작, 상품화 사업, 해외 리메이크 논의가 잇달았고, 시즌 2까지 감안하면 제작비의 열 배가 넘는 이익을 거두리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K콘텐츠 IP 비즈니스의 교과서가 등장하였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난 지금의 상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야심차게 출발한 웹툰은 혹평을 받으며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당초 2024년 방송을 목표로 하였던 시즌 2는 이제야 대본 집필과 사전 제작이 진행되고 있고, 미국·일본·유럽에서 추진 중이라는 리메이크도 성과가 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 IP 확장에는 분명 더 많은 자본과 시간이 투하되었는데 투하된 자본이 효율적으로 회수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수한 조건을 갖춘 사례가 이러하다면 IP를 ‘보유’하는 것과 IP를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방향 어딘가에 답이 있으리라는 산업의 기대는 여전해 보인다. 문제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IP는 ‘보유’와 ‘활용’이 전혀 다른 문제다. IP를 지켜 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조차 활용에서 자본 회수에 실패했다. 답은 확장이 아니라 활용에 있다.
거래 비용의 병목
불신이 키운 과도한 요구, 그리고 무산되는 거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성공의 공식이 아직 없는 이상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쌓여야 비로소 답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시도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가 종종 들린다. 입방아에 오른 사례를 재구성하면 이러하다. 어느 사업자가 원작 IP를 활용한 부가 사업을 기획하였는데 창작자 측이 그로부터 발생할 수익의 상당 부분을 배분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요구를 수용하면 사업의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이 표류한 끝에 결국 사업 자체가 무산되었다.
위 이야기를 창작자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 것은 절반만 읽는 것이다. 창작자의 과도한 요구는 냉정한 계산의 결과라기보다 불신의 표현에 가깝다. 헐값에 권리를 넘기고도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였던 경험, 부당한 계약 조건을 강요당했던 기억이 창작자에게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방어적 태도를 남긴 것이다.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거래 자체를 무산시킨다면 이를 합리적인 행동이라 부를 수는 없다. 성사되지 못한 거래에서 창작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기 때문이다. 한편 그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여 사업을 접는 사업자의 판단은 자연스럽다. 결국 거래는 성사되지 못하고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비효율만 남는다.
경제학은 거래의 성사를 가로막는 이러한 마찰을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라 부른다. 주목할 것은 창작자의 불신이 제도의 공백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IP의 미래 가치를 예측할 수 없고 뒤늦게라도 정당한 몫을 보장받을 장치도 없는 환경에서라면 불신에 기댄 과도한 요구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개별 협상에 모든 것을 맡겨 둔 현재의 구조에서 거래 비용은 콘텐츠 산업의 비효율을 야기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문제의 원인은 어느 한쪽이 아니다. 불합리할 정도로 착취적인 계약 조건으로 IP의 부가 가치가 창작 생태계로 환류되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반대로 과도한 요구로 IP 비즈니스가 성립조차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단 IP가 활용되어야 나눌 몫도 생기는 까닭이다. 성사되지 못한 거래에서는 창작자도, 사업자도, 콘텐츠 향유자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병목의 원인은 탐욕이 아니라 신뢰를 받쳐 줄 제도의 공백이다. 창작자의 과도한 요구는 불신의 표현이고, 거래가 무산되면 모두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권리 존중과 이용 활성화의 양립
예측 가능성과 집중관리, 거래 비용을 함께 낮추는 길
저작권법의 목적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제1조). 권리의 보호와 이용의 활성화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문화의 향상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한 두 개의 축이다. IP 프랜차이즈 역시 마찬가지다.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한편, 적정한 범위에서 이용을 허락함으로써 콘텐츠의 부가 가치를 충분히 발생시키는 것. 여기에 균형점이 있다.
균형점에 이르는 열쇠는 예측 가능성이다. 창작자가 처음부터 크게 부르는 이유도, 사업자가 협상 테이블을 떠나는 이유도 결국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은 어떨까. 표준화된 이용 허락 조건과 요율을 마련하여 협상의 출발점을 제공하고, 수익 규모에 연동하는 사후 보상을 제도화하여 ‘IP가 커지면 나의 몫도 함께 커진다’는 확신을 창작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면 창작자는 초기 요구를 낮출 수 있고, 사업자는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 위에서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 방대한 권리관계를 개별 협상으로 처리할 때 발생하는 거래 비용을 낮추는 일이야말로 저작권 집중관리제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협회가 사업자와 협상을 하면 여러 사안에서 견해가 대립하지만, 콘텐츠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는 명제에서만큼은 언제나 견해가 일치한다. IP 프랜차이즈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창작자와 사업자가 서로를 병목으로 지목하며 대립하는 사이에 시도되지 못한 비즈니스는 그대로 사라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손가락질이 아니라 거래 비용을 함께 낮추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창작자의 권리가 존중되면서도 IP가 활발히 순환하는 생태계. 그것이 높아진 제작비의 벽 앞에 선 우리 콘텐츠 산업이 찾아야 할 답일 것이다.
권리 보호와 이용 활성화는 충돌하지 않으며, 열쇠는 예측 가능성이다. 표준 요율·수익 연동 보상·집중관리로 거래 비용을 낮추는 제도가 답이다.
조병한 Cho Byeong-han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정책기획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