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작 옴니버스가 익숙해지기까지
《킹덤》이 연 짧은 회차, 이제는 기본값이 된 길이
출발은 2019년 《킹덤》이었다. 6부작.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분량이어서 업계에서는 “저게 드라마냐”는 말이 나왔다. 그 뒤 《D.P.》, 《오징어 게임》, 《소년심판》도 6~10부작이었고 이제 그 길이가 기본값처럼 통한다.
길이가 줄어든 자리에서 이야기의 구조도 달라졌다. 주 2회씩 8주를 끌고 가는 드라마는 매주 시청자를 다시 불러 모아야 한다. 회상 장면과 중간 광고용 호흡, 간접 광고(PPL) 자리가 대본에 미리 배정돼 있었다. 전편을 한꺼번에 공개하고 몰아 보는 시청을 전제하면 이 장치들은 쓸모를 잃는다. 촬영을 마친 뒤 공개하는 사전 제작이 표준이 되면서 방영 중에 대본이 나오고 시청률에 따라 결말이 흔들리던 관행도 물러났다.
6~10부작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기본값이다. 짧아진 회차에서 회상·중간 광고 호흡·PPL은 사라지고, 사전 제작이 표준이 됐다.
길이를 정한 것은 작가가 아니라 회계였다
치솟은 제작비가 편성과 회차를 함께 끌어내렸다
숫자를 보면 왜 짧아질 수밖에 없었는지가 드러난다. 《킹덤》의 회당 제작비는 20억 원, 2022년 《수리남》은 58억 3,000만 원이었다.[5] 최근에는 《폭싹 속았수다》가 총 600억 원, 《오징어 게임》이 1,0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8] 같은 시기 지상파와 케이블의 회당 평균 제작비는 5억~15억 원 선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글로벌 배급을 전제로 한 스트리밍 오리지널의 에피소드당 제작비가 기존 방송 드라마의 1.5~3배까지 올랐다고 분석했다.[11]
제작비가 오르자 방송사들은 편성을 줄였다. 2019년 SBS가 월화드라마를, 2023년에는 지상파 3사와 tvN이 수목 시간대를 접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2년 141편이던 드라마는 지난해 80여 편으로 내려앉았다.[10]
대신증권 집계로는 지상파와 CJ ENM·JTBC·ENA에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Disney+) 오리지널을 합친 2024년 편성이 80편·1007회차로 역대 최저였고, 올해는 104편·1358회차가 전망된다.[9] 편수는 돌아오는 중이지만 그 편수는 짧아진 회차를 전제로 계산된 숫자다.
회차의 길이를 정한 것은 작가가 아니라 회계였다. 회당 제작비가 방송 드라마의 1.5~3배로 뛰자 편성과 편수가 함께 줄었다.
그런데 시즌 2는 잘 돌아오지 않는다
짧은 회차의 글로벌 성공, 그러나 조건부가 된 다음 시즌
그러나 짧은 회차는 글로벌 유통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동한다. 넷플릭스가 7월 17일 공개한 ‘2026년 상반기 시청 현황 보고서(What We Watched)’를 보면 상반기 전 세계 시청 시간은 970억 시간으로 반기 기준 최고였고[2], 한국 제작 시리즈의 시청 시간 점유율은 11.0%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3] 《참교육》은 상반기 누적 시청수 4,820만으로 전 세계 6위, 7월 말에는 6,020만을 넘어 비영어권 역대 10위권에 들었다.[4] 10부작 옴니버스가 만든 성적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블룸버그(Bloomberg)의 미디어 뉴스레터 ‘스크린타임’이 이달 초 전한 넷플릭스 자체 집계를 보면, 시즌 2에서 시청자가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1] 《나이트 에이전트》(The Night Agent)는 시즌 2에서 시청자의 절반을, 시즌 3에서 다시 35%를 잃었다. 《원피스》(One Piece)는 시즌 2에서 30% 넘게, 《비프》(Beef)는 70% 넘게 줄었다. 넷플릭스는 《나이트 에이전트》를 다음 시즌으로 끝내기로 했다. 반대로 《포 시즌스》와 《러닝 포인트》는 절반 넘게 빠졌는데도 시즌 2 제작이 결정됐다. 어떤 기준으로 갈렸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회사 사정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의 총 시청 시간 증가율은 2%에 못 미쳤고, 주가는 올해 들어 17%, 1년 기준 40%가 빠졌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 인수를 시도했다가 발을 뺀 과정도 투자자의 불안을 키웠다.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이 시즌 갱신에 냉정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국내에서도 시즌제는 이미 표준어처럼 쓰인다. SBS는 《택시 드라이버 3》, 《굿 파트너 2》, 《지옥에서 온 판사 2》를 이어 가고 있다. 실연자의 자리에서 시즌제는 두 얼굴이다. 한 작품에 오래 머물 수 있다는 뜻이면서 다음 시즌이 열리기 전까지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16부작 한 편의 계약이 10부작 두 시즌으로 쪼개지면 뒤쪽 절반은 조건부가 된다. 판정 데이터는 플랫폼 안에만 있고, 넷플릭스는 이번 보고서를 끝으로 시청 데이터 공개 주기를 연 1회로 줄인다고 밝혔다. 근거를 확인할 창이 좁아진다.

짧은 회차는 글로벌 유통엔 유리하지만, 다음 시즌은 조건부가 됐다. 시즌 2에서 시청자가 대거 빠지며 갱신은 냉정해졌고, 16부작이 두 시즌으로 쪼개지면 뒤쪽 절반은 조건부다.
회차로 계산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회당 정액이라는 보수 산정의 기준선이 흔들린다
실연자에게 회차는 곧 보수의 단위다. 국내 출연료는 오랫동안 회당 정액으로 매겨졌다. 같은 배역을 같은 기간 연기해도 16회가 12회가 되면 계약서의 총액은 네 회분 줄어든다. 촬영 일수가 그만큼 줄지도 않는다. 사전 제작과 글로벌 동시 공개로 완성도 기준이 올라가면서 회당 촬영 일수는 오히려 늘었다.
기준선 자체도 흔들린다. 넷플릭스가 시리즈 출연료에 회당 3억 원대 상한을 두고 있다는 보도가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일률적 상한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출연료는 “회차 수가 아닌 실제 투입 시간과 기여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7월 16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KOFIC)가 매니지먼트사·영화 제작 단체와 중예산 영화의 주·조연 출연료를 순제작비 10% 미만으로 맞추는 협약을 맺었다.[7] 영화에서 시작된 기준선이 드라마 협상 테이블로 넘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무너지는 기준을 대체할 새 기준은 아직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2025 방송 프로그램 외주 제작 거래 실태 조사’를 보면 드라마 총제작비에서 출연료 비중은 지상파 32.5%, 제작사 32.7%로 가장 컸고, 단가를 먼저 낮춰야 할 항목으로 방송사는 100%, 제작사는 83.3%가 출연료를 꼽았다. 반대로 올려야 한다고 답한 항목은 제작진 인건비(41.7%)와 기획료(33.3%)였고, 기술 스태프 인건비는 5~7년 전 수준이라는 지적이 함께 나왔다.[6] 압력은 주연 몸값을 겨냥해 시작되지만 실제로 깎이는 쪽은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는 조연과 단역, 스태프다.
여기에 권리 구조가 겹친다. 글로벌 OTT 오리지널에서 지식 재산권(IP)은 플랫폼에 남고 국내 제작사는 제작 용역의 대가를 받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넷플릭스의 수요 점유율이 커질수록 협상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작품이 오래, 멀리 팔릴수록 보상이 따라오는 장치가 계약서에 없다면 실연자의 몫은 촬영이 끝나는 날 확정된다.
회차가 곧 보수였던 실연자에게 ‘회당 얼마’라는 기준선이 흔들린다. 회차는 줄어도 촬영 일수는 그대로이고, 깎이는 쪽은 조연·단역·스태프다. 재사용 보상이 없으면 실연자의 몫은 촬영 종료일에 확정된다.
그릇이 바뀌면 셈법도 바뀌어야 한다
상한선의 높낮이가 아니라 산정 기준의 설계로
이야기가 짧아진 것 자체를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12부작은 늘어지는 중반부를 덜어냈고, 10부작 옴니버스는 국경을 넘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보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회차는 줄고, 다음 시즌은 데이터가 정하고, 성과는 국경 밖에서 쌓이는데 셈법만 ‘회당 얼마’에 묶여 있다. 실연자 단체가 논의할 것은 상한선의 높낮이가 아니라 산정 기준의 설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투입 시간과 기여도를 무엇으로 측정할지, 시즌 갱신 근거를 어디까지 열게 할지가 다음 계약서의 언어다. 다음 회에서는 배우와 스태프, 음악 실연자의 생계를 들여다본다.
※ 회당 제작비와 출연료는 공개된 작품과 업계 추산에 근거한 수치로, 계약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 1Lucas Shaw, 「Screentime: Netflix’s second season conundrum」, 블룸버그(Bloomberg) 뉴스레터, 2026. 8. — 《나이트 에이전트》·《원피스》·《비프》 등 시즌별 시청수 감소, 시즌 갱신 결정, 시청 시간 증가율 2% 미만, 주가 하락과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 철회.
- 2넷플릭스, 「2026년 상반기 시청 현황 보고서(What We Watched)」, 2026. 7. 17. — 상반기 전 세계 시청 970억 시간, 시청 데이터 공개 주기 연 1회 전환.
- 3「[단독] 한국 작품, 넷플릭스 점유율 2위」, 중앙일보, 2026. 7. 20. — 한국 제작 시리즈 시청 시간 점유율 11.0%. https://v.daum.net/v/20260720145108257
- 4「‘참교육’ 넷플릭스 상반기 시청 시간 전 세계 3위」, 이코노믹리뷰, 2026. 7. — 《참교육》 누적 시청수와 한국 콘텐츠 편수 비중.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745507
- 5조유빈, 「K 콘텐츠 대국의 그림자…‘넷플릭스 10년’이 만든 황금기의 역설」, 시사저널, 2026. 8. 1. — KDI 분석, 《킹덤》·《스위트홈》·《수리남》 회당 제작비, IP 귀속 구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우려.
- 6「출연료가 삼킨 드라마…방송사는 적자, 제작사는 쥐어짜기」, 아시아경제, 2026. 3. 31.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방송 프로그램 외주 제작 거래 실태 조사」 수치. https://view.asiae.co.kr/article/2026033101280162566
- 7「배우 몸값, 정부가 낮춘다」, 스포츠경향, 2026. 7. 16. — 문화체육관광부·영화진흥위원회 협약(순제작비 10% 미만).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607161154003
- 8「넷플릭스 이어…‘출연료 10% 미만’ 배우 몸값 낮추기 나선 정부」, 미주중앙일보(OSEN), 2026. 7. 16. — 회당 3억 원대 상한 보도와 넷플릭스 입장, 《폭싹 속았수다》·《오징어 게임》 제작비 규모.
- 9정민경, 「2026년, 콘텐츠 산업 반등할까」, 미디어오늘, 2026. 1. 11. — 대신증권 산업 전망(편성 편수·회차).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283
- 10「[세상만사] 치솟은 출연료, 상생 택한 배우들」, 국민일보, 2026. 7. 22. — 드라마 제작 편수 141편(2022)에서 지난해 80여 편으로 감소.
- 11유진희,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 방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미디어 이슈&트렌드』 Vol.63, 2024. https://www.kca.kr/Media_Issue_Trend/vol63/KCA63_23_trend.html

한정훈 Han Jung-hun
K-EnterTech Hub 대표 · 동국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
JTBC 등에서 미디어 전문 기자로 23년을 일했다. 현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현장 취재를 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테크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오디언스를 불러오는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