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5 · AUGUST 2026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웹진
동틀 무렵 도시 스카이라인 위로 방송 송신탑에서 동심원 전파가 하늘 전체로 퍼져 나가는 일러스트 —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실연과 콘텐츠 신호를 상징한다
network · Global Stage

스트리밍 시대, 국제 협력은 왜 필수인가

권리의 글로벌 네트워크

친애하는 KoBPRA 회원 여러분, 그리고 한국 영상 산업 곳곳에서 THE PERFORMER를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께,

실연자는 자신의 실연이 해외에서 이용될 때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요? 이제 이 질문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어느 나라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웹진에 글을 싣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울러 실연자 단체 사이의 국제 협력이 왜 이제는 선의의 차원을 넘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었는지도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01 Chapter
A Borderless Market, Rights That Stop at the Border

국경 없는 시장, 국경에서 멈추는 권리

실연은 국경을 넘는데 보상받을 권리는 국경 앞에서 멈춘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국경을 넘어 콘텐츠를 유통합니다. 전 세계에 동시에 수십 개 나라에서 모은 수천 편의 작품을 기한 없이 계속 서비스합니다. 한국 드라마 한 편을 같은 날 저녁 마드리드에서도 라고스에서도 상파울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구독 서비스로 말입니다. 이는 이 산업의 상업적 논리일 뿐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실연은 국경을 넘어갔는데 그 이용에 대해 보상받을 권리는 국경 앞에서 멈춰 선다는 점입니다.

배우에게 이는 결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실연이 해외에 판매되는 순간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그 나라의 법과 계약이 어떠한가에 따라 갈립니다. 플랫폼이 그 실연으로 수익을 올렸는지는 그다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디에서든지 실연이 이용되었다면 보상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오늘날 실연자 단체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뿐입니다.

02 Chapter
Two Paths, One Destination

두 갈래 길, 하나의 목적지

단체 교섭과 법정 보상 청구권, 두 수단을 견주다

첫 번째 길은 단체 교섭입니다. 실연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충분히 강하다면 재상영 분배금(residuals)이나 로열티 같은 계약상 보상을 협상으로 얻어 낼 수 있습니다. 작품이 어느 시장에서 다시 이용되든 보상이 뒤따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곳에서는 매우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산업 특성에 맞게 조건을 정할 수 있고, 시장이 달라지면 다시 협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갈 수 있는 실연자는 소수에 그칩니다. 단체 협약은 서명한 당사자만 구속하기 때문입니다. 협약에 서명한 제작자, 그리고 그 조건으로 출연 계약을 맺은 실연자에게만 적용됩니다. 협약 밖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서명하지 않은 제작자의 작품도, 실연자 단체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 만든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작품이 글로벌 플랫폼에서 아무리 크게 성공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실연자 단체가 계속적인 보상을 관철할 만큼 강하지 못한 곳에서는 이른바 바이아웃(buy-out)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작자가 출연료를 일시금으로 한 번 지급하면 실연자는 이후의 모든 청구권을 포기하는 방식입니다. 그 뒤로는 작품이 다음 주에 내려가든 50개 국에서 10년간 스트리밍되는 세계적 히트작이 되든 실연자의 수입은 똑같습니다. 일시금이 거래의 전부였고, 거래는 이미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부 작품에서만 벌어지는 예외적인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부분의 실연자에게 영상 산업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바이아웃이 일반적인 현실이라면 단체 교섭은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대안을 협상해야 할 실연자 단체에게 애초에 그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는 길은 하나입니다. 교섭력에 기대지 않는 권리, 곧 법정 보상 청구권입니다. 이 권리는 법으로 정해지며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플랫폼이나 방송사 같은 이용자는 원래 계약 내용이 어떠했든 집중 관리 단체를 통해 실연자에게 보상을 지급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더 나은 수단이라고 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권리는 좋은 협약이 적용되는 작품에 출연한 운 좋은 실연자만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 모든 실연자에게 모든 작품에서 이용이 이루어질 때마다 적용됩니다. 바이아웃 계약을 맺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 보상 청구권은 단체 교섭 시스템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단체 교섭이 잘 작동한다면 말입니다. 법정 보상 청구권은 단체 교섭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실연자들을 위한 안전망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실연자가 대부분의 경우 이 안전망에 기대게 됩니다.

03 Chapter
Why One Country Is Not Enough

왜 한 나라만으로는 부족한가

스트리밍 구조가 만든 소액 보상, 합산해야 비로소 의미가 된다

논의는 보통 여기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법정 권리만으로는 아무리 잘 설계해도 의미 있는 금액을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조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송사는 한 시간대에 정해진 프로그램만 내보냅니다. 어떤 영화가 화요일 저녁에 방영된다면 그 시간에 그 채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그 영화뿐입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다릅니다. 수천 편의 작품이 동시에 서비스되고, 수천 명의 구독자가 저마다 다른 작품을 골라 봅니다. 그만큼 실연자에게 돌아갈 구독 수익도 훨씬 많은 작품과 시청량에 나뉘게 됩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한 나라에서 한 편의 실연에 배분되는 금액은 같은 실연이 전통적인 방송에서 벌어들였을 금액보다 훨씬 적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A국에서 걷은 소액에 B국, C국, D국에서 걷은 소액을 더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제야 실연의 가치와 파급력에 걸맞은 보상에 가까워집니다. 반대로 각 나라의 금액을 걷지도 않고 주고받지도 않은 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요? 작품이 몇 개 나라에서 스트리밍되든 간에 보상은 어디에서나 미미한 수준에 머무릅니다. 스트리밍이 세계를 무대로 삼는 만큼 대응도 세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실연자가 받아야 할 보상에는 국내 이용뿐 아니라 해외 이용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잘 만든 국내법 하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04 Chapter
Two Stages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두 단계의 국제 협력

입법과 양자 간 계약, 권리를 실제 지급으로 바꾸는 두 단계

이를 실현하려면 두 단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입법 단계입니다. 되도록 많은 나라에서 실연자가 실연의 이용에 대해 보상받을 법적 권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국제 규범이 시청각 실연에 관한 베이징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실연이 다른 나라에서 이용될 때 실연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GAVA는 5대륙 30여 개 회원 단체와 함께 움직이고 있으며 KoBPRA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직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는 비준을 촉구합니다. 이미 채택한 나라에는 조약을 충실하고 실효성 있게 이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후자는 전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서류에만 존재할 뿐 집행 가능한 국내법으로 이어지지 않는 권리는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2020년 4월 베이징 조약에 가입했습니다. 이 점에서 KoBPRA 회원 여러분은 다른 여러 나라의 동료들보다 한발 앞서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두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진행 중인 저작권법 개정 논의와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베이징 조약은 실연이 방송되거나 공중에 전달될 때 실연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두 가지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연자가 이용을 허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배타적 허락권(제11조 제1항)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용을 막지는 않되 그 대가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공정한 보상 청구권(제11조 제2항)입니다. 조약에 가입하는 나라는 이 가운데 어느 길을 따를지 선언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제11조 제3항). 한국은 가입 당시 첫 번째 길을 택했습니다. 배타적 허락권을 따르되 그 적용 범위를 “방송 또는 유선 송신을 위하여 시청각 고정물에 고정된 실연에 관하여만”으로 좁힌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의 국제적 약속은 보상 청구권 모델이 아니라 범위를 좁힌 배타적 권리 모델에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번 개정 과정에서 한국의 입법자가 제가 앞서 주장한 대로 법정 보상 청구권이 실연자에게 더 낫다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국내법만 바꾸어서는 부족합니다. 이 선언도 다시 검토해 바꾸어야 합니다. 조약상 한국의 입장과 국내법이 택한 방식이 서로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쟁점처럼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국내의 정책 선택과 국제적 선언은 함께 가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법이 마련된 뒤에 시작됩니다. 권리가 서류상으로 실연자의 것이 되면 이제 집중 관리 단체들이 나설 차례입니다. 단체들끼리 양자 간 계약을 맺고 서로의 회원을 대신해 데이터와 보상금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실무에서는 이런 모습이 됩니다. 한국 실연자의 실연이 스페인에서 이용되면 AISGE가 이를 파악해 보상금을 지급합니다. 반대로 스페인 실연자의 실연이 한국에서 이용되면 KoBPRA가 같은 일을 합니다. 실연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이용 데이터를 주고받고, 정산 내역을 맞추는 일입니다.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은 실무 작업이지만 권리가 실제 지급으로 바뀌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GAVA도 이 영역을 전략적 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 교환을 위한 공통 표준을 만드는 한편, 다른 분야에서 이미 구축된 실연자 데이터·보상금 교환 인프라를 회원 단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05 Chapter
Building the Network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

집중관리단체의 진정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완성될 때

법정 권리 하나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권리를 부여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만 효력을 가집니다. 이것은 마치 다른 도로와 연결되지 못한 외딴 길과 같습니다. 길과 길이 서로 이어져 도로망을 이룰 때 비로소 어디로든 닿을 수 있습니다. 실연이 국경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권리 하나만으로는 실연자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실연은 어디로든 뻗어 나갑니다. 실연자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국경을 가리지 않는 시장에서 자신의 실연이 이용된 만큼 정당한 몫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집중 관리 단체들의 진정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회원을 인정하고, 실연이 만들어진 곳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이용이라도 각자 보상금을 걷어 보내 주는 네트워크 말입니다. 그런 네트워크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실연자의 보상이 달라집니다. 출연 계약을 맺은 한 나라에서 우연히 벌어들이는 금액이 아니라 작품이 도달한 모든 나라에서 실제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실연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 바로 GAVA가 설립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함께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각국의 입법과 단체 간의 상호 관리 계약을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 가면서 말입니다. KoBPRA와 회원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GAVA 사무총장 호세 마리아 몬테스(José María Montes)

Writer
필자 호세 마리아 몬테스

호세 마리아 몬테스 José María Montes

GAVA(Global Audiovisual Alliance) 사무총장

GAVA(Global Audiovisual Alliance)는 5대륙 30여 개 실연자 집중관리단체가 참여하는 국제 연대체로, 시청각 실연자의 국경 간 보상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한다. KoBPRA도 회원단체 중 하나다.

사단법인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KOBPRA · Korea Broadcasting Performers' Right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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