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WRITE.S vol.81
AI 기술로 부활한 응삼이는 무엇을 남겼을까
2020년 세상을 떠난 박윤배 배우가 부활했다? tvN 스토리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스튜디오에 모여 앉은 <전원일기>의 배우들은 화면 저편으로 박윤배 배우가 등장하자 오만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AI 하이브리드 딥페이크 솔루션을 통해 재현된 박윤배 배우의 이미지와 목소리. 이미 세상을 떠나 만날 수 없는 고인이지만 이렇게 화면 속으로 등장하자 그와 함께 <전원일기>를 찍었던 동료 선후배 배우들은 신기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드러냈다.
김수미는 “무섭다”고 했고, 박은수는 “기술 희한하네”라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영상 속 AI로 재현된 박윤배 배우가 “우리 전원일기 식구들 잘 지내셨죠? 네 양촌리의 영원한 총각, 노총각 응삼이 박윤배입니다.”라고 말하고, 김수미가 나를 알아보겠냐고 묻자 특유의 목소리 그대로 “아유 일용엄니를 왜 몰라유”라고 답하면서 낯설음은 조금씩 반가움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박윤배의 딸 박혜미씨가 나와 영상을 통해 AI 박윤배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튜디오는 눈물바다가 됐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그 사별의 아픔을 담담히 어루만져주며 위로해주는 고인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이 날 방송에 등장한 AI 박윤배의 모습에서 주목할 만 한 건, 영상보다는 대화에서였다. 감정적인 떨림까지 담겨진 목소리도 특유의 습관까지 똑같았지만 데이터들을 통해 가능했을 디테일한 대화들은 그 AI 형상을 진짜처럼 믿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동료 배우들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과거에 함께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덕담은 물론이고 농담까지 던지는 모습은 출연배우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그 상황을 진짜처럼 몰입하게 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 달린 시청자 반응들은 AI기술인 걸 알고 있어도 너무나 감동이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역시 겪었던 고인과의 사별을 그 특별한 만남에 대입해서 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며 다시 얼굴을 보고 듣고 대화하고 싶다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이 사례는 AI 기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AI 박윤배의 사례처럼 이제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은 그저 기억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 보고 듣고 대화하는 차원으로까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방송으로 보면 AI 기술은 그저 가상이 실재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신기한 차원이 아니라, 어떤 습관이나 부족한 점들까지 재연해내는 ‘기억의 디테일’을 통해 이제는 공감하는 차원으로까지 나가는 게 아닐까. 결국 인간을 닮아가려는 AI의 방향성은, 냉정하고 정확한 기술적 디테일이 아니라, 인간의 온기를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가 되는 게 아닐까.
<너를 만났다>로부터 2년 후, 진화한 기술이 말해주는 것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영상 기술로 재현해 다시 만나게 한다는 콘셉트의 방송은 이미 2년 전 MBC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를 통해 시도된 바 있다. 병으로 셋째아이를 잃은 엄마를 위해 제작진은 VR기술을 동원해 아이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했고, 엄마가 VR을 통해 아이를 만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방영 전부터 이 같은 기술을 활용한 고인의 재연이 어떤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내놨고, 무엇보다 아무리 비슷하게 재연한다고 해도(아니 어쩌면 너무 똑같이 재연한다면 더더욱)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뜻의 언캐니 밸리는 로봇공학 이론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에 가까운 형상으로 구현할 때 오히려 느끼는 거부감을 말한다. 마치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좀비를 봤을 때 느끼는 으스스함이 그것이다.
하지만 방송은 이것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줬다. 아직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 어색한 영상들이 많았지만 그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이를 다시 보고픈 엄마의 그리움과 감정들이 그러한 모든 부족함을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즉 기술보다 중요한 건 그 기술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그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너를 만났다>는 그 방향성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기 때문에 기술적 한계들은 그다지 문제로 지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이제는 VR 기술 정도가 아니라 AI 기술이 더해져 훨씬 디테일해진 응삼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2년 전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건 방송콘텐츠에 있어서 AI 기술의 적용은 기술보다 기획 즉 어떤 방향성을 갖는가가 관건이라는 점이다.
기술은 거들 뿐, 문제는 방향이다
최근 들어 챗 GPT 같은 대화형 AI 챗봇이 등장하면서 AI 기술은 성큼 우리네 일상 속으로 다가온 중대한 이슈가 되었다. 질문을 던지면 유머 섞인 답변은 물론이고 시나 보고서를 써주기도 하는 등 급속도로 진화해가는 이 기술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오가는 미래에 대한 양극단의 기대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AI가 바꿔놓을 직업 중에 창의력을 요하는 분야는 예외로 생각했지만, 갈수록 발전하는 AI 기술은 이러한 심리적 장벽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AI 기술은 현재 우리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을 활용한 방송콘텐츠를 통해 우리는 대중들이 이 기술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인간을 재현해내는 AI 기술은 결국 인간이 가진 그 따뜻한 온기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불쾌한 골짜기는 갈수록 깊어질 것이고, 기술이 진화할수록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와 윤리적 문제들은 첨예해질 것이다. 공은 그저 더 멀리 나가는 것으로 목표를 이루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나가는가가 목표에 접근하는 길이다. 그래서 방송콘텐츠에 있어서 AI 기술의 올바른 적용에 대해, <슬램덩크>의 명대사 “왼손은 거들 뿐”을 빌어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은 거들 뿐”이라고. 중요한 건 방향이니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