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POP 업계에서 하이브와 어도어, 방시혁과 민희진의 분쟁이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경영상의 문제를 넘어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복잡한 관계와 인식의 문제를
담고 있다. 본 글은 이번 이슈를 통해, 소속 아티스트가 기획사 혹은 기획자의 소유물처럼
여겨지는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아티스트들은 왜 이러한 인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현 엔터테인먼트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티스트는 왜
소유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우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가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장하던 초기 성장 단계에서 기획사가 아티스트의 발굴, 트레이닝,
프로모션, 매니지먼트 등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고, 소위 슈퍼스타들이 배출되면서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가 합쳐진 이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기획사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역할에 정당성을 얻으며 점점 커졌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성공이 곧 기획사의 성공으로 직결되면서 이러한 ‘집중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열애설을 비롯해 사적인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시작하며 기획사의 관리 영역은 점점
깊어졌고, 아티스트를 마치 자신의 작품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아티스트에게 불공정한 계약 구조로 이어졌다.
표준계약서에 갇힌
아티스트의 권리
아티스트가 체결하는 표준계약서는 아티스트의 권리를 보장하고 기획사의 부당한 대우와
무리한 활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획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아티스트의 활동에 제약을 두거나 방치하는 경우, 이를 대처할 방안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기획사의 내부 분쟁이나 갈등 등으로 아티스트의 활동이 중단되면, 아티스트는 이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이는 아티스트가 기획사의
결정에 종속되어 자신의 수익 활동조차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계에서는 표준계약서의 계약 기간이 최대 7년으로 설정된 점에 의구심을 갖는다.
계약서상 7년은 아티스트가 충분히 활동하고 기획사가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으로 여겨지지만, 아티스트에게 7년의 계약 기간은 큰 부담이 된다. 특히 청소년기에
데뷔하는 아이돌의 경우 개인적인 성장과 자유가 제한될 수 있으며 이는 아티스트의 창작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표준계약서가 아티스트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부속계약서나 다른 문서들이 추가되면서 사실상 표준계약서를
무력화하는 내용이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티스트에게 불리한 조항이 부속계약서에
포함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질적 문제 1.
연습생 계약서와 불투명한 정산 구조
연습생 계약서에는 아티스트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기획사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연습생 계약서에서는 소속사가 연습생에게
사용한 비용에 대한 회계내역을 매년 두 차례 통보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도 명문화되어 있으며 연습생이 자신에게 발생한 훈련비 항목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습생은 소속사로부터 이러한
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어 자신에게 어떤 비용이 발생했는지, 불필요한 비용이 부과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는 연습생이 불합리한 채무를 떠안게 될 위험을 증가시키며 연습생과
기획사 간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2022년부터 약 2년간 연구를 위해 50명의 연습생을 인터뷰한 결과, 비용에 대한 통보를 받은
연습생은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이는 연습생 계약서의 규정이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연습생들이 소속사에 요청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어린
연습생들은 소속사라는 권위에 눌려 요구하지 못하거나, 요구하더라도 즉각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질적 문제 2.
기획사와 아티스트 간의 소송 문제
몇몇 기획사들은 계약이 끝나면 아티스트의 정산금이 사라지니 오히려 소속사의 손해라고
주장한다. 이는 아티스트의 시간과 기획사의 정산금을 둘러싼 끝없는 갈등과도 같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져 직원을 해고하는 일반 회사와는 달리,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큰돈을 들여
만든 아티스트를 일명 ‘보석함’에 넣어둔 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아티스트는 소속사를
믿고 7년의 세월을 맡기지만 소속사가 경영난으로 활동을 불가능할 경우, 아티스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계약으로 인해 항상 적인 노동 상태에 놓이게 되어 경제적인
불안은 물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신적인 우울감까지 겪게 된다.
기획사를 나가고 싶다면 정산금을 갚거나 심한 경우 위약금까지 더해지는데, 이 정산금에는
아티스트를 위한 교육비나 숙소, 식비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회사 운영을 위한 직원들의
인건비나 투자유치를 위한 비즈니스 과정에서 사용된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비용도 많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기획사가 통보하지 않는 이상 연습생은 정산금의 출처를 확인
할 수 없다.
이러한 불투명한 정산 구조와 소위 ‘보석함’에 갇혀 활동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아티스트는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결국 소송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소송은 최소 2년 이상 지속되며
소송 기간 동안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다. 이는 한 번의 계약으로 인해 계약상 남은 기간과
소송 기간을 합쳐 몇 년 동안 아무런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놓이게 한다.
표준계약서 및 연습생 계약서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가 있지만 실제로 아티스트나
연습생이 소송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는 것은 쉽지 않다. 법적 자문과 재정적 인프라를 갖춘
기획사에 비해 아티스트나 연습생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 법무법인 화우 연수원에서 개최된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학술세미나에서
"KPOP 스타시스템 분석 - 하이브 어도어 사태를 돌아보며" 라는 주제로 허유정 간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아티스트 역할에 대한 인식과
한국 엔터산업의 질적 성장
하이브와 어도어 관련 기사가 줄어들면서 표면적으로는 잘 해결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행 표준계약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아티스트의 권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계약 기간, 정산 방식, 활동 중단 시의 대처
방안 등에 대한 조항을 명확히 하고, 아티스트가 기획사 경영상의 문제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연습생과 아티스트가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 우후죽순 설립된 회사들이 어린
연습생들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나 무책임한 관리로 희생양을 만드는 관행 또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며 아티스트의 역량과 노력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가 존중받길
바라본다. '누군가의' 혹은 '어딘가의' 소속이라서 성공했다는 일차원적인 인식을 넘어,
아티스트들은 단순히 기획사의 작품이 아닌 자신의 역량과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 주체로서
인식되어야 하며 그 가치가 보호받을 때 K-POP은 세계적인 문화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