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것처럼 이제 글로벌 협업은
기획, 제작, 유통의 전 과정에서 국경을 허무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왔다. 이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을까. 또 그것은 어떤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까.
글로벌 협업,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킹 오브 킹스> 사이
글로벌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한국 음식은 물론이고, 한글 간판이 즐비한 거리, 목욕탕,
한의원 등등 잘 고증되어 재현된 한국 문화가 작품 곳곳에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니픽쳐스에서 제작한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과연 K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니픽쳐스에서 제작했지만, 이 작품에는 매기 강 감독을 중심으로 아트디렉터 다혜 셀린 김
같은 한국계 제작진들이 참여하고, 트와이스, 오드리 누나, 이재(EJAE) 같은 한국 혹은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노래하며, 테디를 비롯한 더블랙레이블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했고,
리정이 안무를 안효섭, 이병헌이 목소리를 맡았다. 무엇보다 소니픽쳐스에서 일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은 한국 문화 고증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제작
투자는 소니픽쳐스가 했지만, 한국계나 한국인들이 제작의 중심에 있었고, 무엇보다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것이 경제적
파급력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K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의
글로벌 협업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 K콘텐츠의 범주는 그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미국의 투자에 의해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한국의 제작사 모팩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북미에서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는 정반대의 사례다. 그간 북미 흥행
수익 1위였던 <기생충(약 5,380만 달러)>의 기록을 깬 이 작품은(약 6027만 달러) 그 원작이
찰스 디킨스의 소설 <우리 주님의 생애>다.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서구의 기독교
문화를 소재로 해 그들에게 맞춘 콘텐츠를 제작한 후 미국의 현지 스튜디오에 배급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 글로벌 협업은 국경을 넘어,
타국의 문화를 소재로 삼는 단계로까지 접어들었다. 애플에서 1천억을 투자해 제작한 재일
한인의 이야기를 다룬 <파친코>나, 1600년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2024년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무려 19관왕을 기록한 미국 FX 제작 <쇼군> 같은 작품들이 그
사례다. 이제 좋은 이야기 소재가 있는 곳이라면 제작자들은 어디든 달려간다.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의 역사를 다루는 작품에 투자하고, 한국이 서구의 문화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시대가 됐다.
전유가 아닌 존중을 위해 더욱 중요해진 협업
이러한 타국의 문화를 소재로 삼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고증이다. 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활용하는 방식의 접근은 이른바 ‘문화의 전유’로서 비판
받아왔다. 특히 OTT로 글로벌한 시청이 이뤄지는 시대에 고증의 실패는 작품의 실패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그 문화권의 경험을 가진 이들과의
‘협업’이 중요해졌다. <오징어 게임>처럼 투자는 넷플릭스에서 하지만 전체 제작은 한국인이
하는 경우는 전혀 고증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애플이 제작한 <파친코>나 소니픽쳐스가
제작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경우 고증은 필수적인 관건이 된다. 그래서 이 글로벌
협업 작품에는 그 문화권을 일부라도 갖고 있는 이민자 혹은 이민자 2세 출신 제작자가
참여한다. <파친코>의 코고나다 감독, 저스틴 전 감독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이들은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으로서 그
영어권 서구인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민자 출신 감독들은 두 문화의 하이브리드로 만들어지는 작품에 참여하는 다국적
제작진이나 출연자들을 하나로 묶어 작업을 해내는 데 능숙하다.
최근 들어 이민자들을 다루거나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인 작품들이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아카데미 7관왕을 거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미나리>, 에미상 8관왕의 <성난 사람들> 같은
작품들이 나오게 된 건, 그만큼 글로벌해진 콘텐츠 시장에서 서로 다른 문화의 공존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미국의 할리우드 같은
제작사들에는 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한 협업 또한 중요해졌다.
글로벌 협업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회들
한때 이민자들은 두 개의 문화권 사이에서 차별 받아왔다. 하지만 글로벌 협업이라는 새로운
시대 앞에서 이들이 가진 두 개의 문화적 정체성은 오히려 경쟁력과 가능성이 됐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감독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전생과 현생을 경험하는 듯한
이민자들만이 겪는 문화적 정체성을 경험했던 셀린 송 감독은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 역시 자신이 겪은 정체성
혼돈을 작품 속 루미(데몬과 헌터의 피를 모두 가진)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해 냈다. 배우
스티븐 연은 <워킹데드>로 이름을 알렸지만, 이민자들의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낸 <성난
사람들>을 통해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에도
출연하는 등 한국과 글로벌 시장 모두에서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 문화는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핫한
문화로 떠올랐다. 한국계 미국인인 대니얼 대 킴이 제작하고 주연까지 맡은 <버터플라이>는
한국을 올로케이션 했다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화제가 됐다. 또한 이 작품은 여기 출연한
배우 김지훈에게 글로벌 진출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협업은 그간 한국에만
집중하던 배우들에게도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
출연했던 유태오는 한국계 독일인으로 한국 작품은 물론이고 <더 리크루트2> 같은 미국
시리즈에도 출연했으며 최근에는 <존윅> 제작사의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카로시>의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배우들에게도 본격적인 글로벌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은 이제 미리 준비해야 할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