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칼럼
퍼블릭도메인으로서 K-콘텐츠

조병한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정책기획팀장

KoBPRA WEBZINE Vol.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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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의 정체성

‘K콘텐츠’라는 용어는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의미가 명확하였다. 한국에서 만든,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이른바 ‘K콘텐츠’를 보면 의문이 든다. K콘텐츠는 여전히 한국의 콘텐츠를 의미하는 용어인가?

최근 화제가 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K팝이라는 한국의 문화 코드를 차용하였으나, 제작 주체와 창작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국적이라 부르기 어렵다. 넷플릭스가 기획하였고, 글로벌 자본으로 제작되었으며, 한국은 단지 소재와 배경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쳤다. 이쯤 되면 K콘텐츠는 한국 콘텐츠가 아니라 넷플릭스가 운용하는 하나의 브랜드 카테고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K콘텐츠의 ‘K’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저작물인가, 아니면 퍼블릭도메인으로서 넷플릭스의 콘텐츠 분류 체계에서 하나의 기호 Key 에 불과한가?

디즈니 프린세스와
넷플릭스의 K-콘텐츠

퍼블릭도메인의 활용을 말하자면 디즈니를 거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디즈니는 각국의 설화와 민담을 수집하여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이를테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를, 〈뮬란〉은 중국의 전설을, 〈모아나〉는 폴리네시아 신화를 창작 소재로 한 것이다. 이들 원전은 모두 퍼블릭도메인 public domain 에 속하는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다.

디즈니의 퍼블릭도메인 활용에 대하여서는 원전의 문화적 가치를 도용하고 훼손한다는 문화적 전유 cultural appropriation 의 문제가 종종 지적되었다. 원전이 지닌 원본성의 아우라를 쉽게 빌리는 한편,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서사 요소를 가볍게 희화화하거나 삭제하여 그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가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양식으로 원전을 재해석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디즈니는 특유의 애니메이션 기법, 뮤지컬 형식, 서사 구조를 통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 기여도를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은 어떠한가? 넷플릭스는 한국의 창작자와 제작자가 만든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유통할 권리를 확보한다. 창작자의 권리는 제작자에게, 제작자의 권리는 다시 넷플릭스에 넘어간다. 결국 K콘텐츠는 넷플릭스의 자산이 되고, 한국 콘텐츠산업의 역할은 콘텐츠 생산 하청기지에 그친다. 그 과정에서 넷플릭스가 K콘텐츠의 창작에 대하여, 산업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기여한 바는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넷플릭스는 선심이나 쓰듯 “넷플릭스의 작품이 대한민국을 PPL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넷플릭스는 K콘텐츠의 주인으로 행세할 자격이 있는가?

저작권법이 만든 자동문

현행 저작권법의 영상저작물 특례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권리 이전을 너무나 쉽게 만든다. 특약이 없으면 창작자의 권리는 자동으로 영상제작자에게 양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글로벌 플랫폼은 압도적인 자본력과 협상력을 바탕으로 제작자로부터 모든 권리를 가져간다.

그야말로 자동문이다. 넷플릭스가 다가서기만 하면 한국 저작권법은 스스로 문을 열어 창작자와 제작자의 권리를 내어준다. 비유컨대 한국의 콘텐츠산업은 글로벌 자본 앞에서 ‘퍼블릭도메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퍼블릭도메인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누구든 자본만 있으면 약탈을 일삼을 수 있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양상이다. 저작권법 영상저작물 특례 개정을 둘러싸고 창작자와 제작자가 대립하고 있다. 제작자는 개정안이 산업에 부담이 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창작자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개정을 촉구한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진짜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협력의 필요성

한국의 창작자와 제작자가 서로 대립하는 사이, 글로벌 플랫폼은 양쪽 모두로부터 권리를 가져간다. 이는 마치 조개와 도요새가 싸우는 사이 어부가 이득을 보는 격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작자와 제작자 간의 대립이 아니라 협력이다.

유럽연합의 사례를 보자.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계약에서 영상제작자가 직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스트리머들이 주로 사용하는 위탁 제작 commissioning 모델에서는 제작자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권리를 보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미국 기업이 운영하는 글로벌 플랫폼과 계약에서 유럽 작품의 지적재산권이 유럽 밖으로 이전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특히 소규모 독립 제작사들이 극도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지적한다. 권리를 보유하지 못한 제작자는 새로운 작품에 투자할 능력을 상실하고, 장기적으로는 산업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받는다. 이는 곧 콘텐츠의 다양성 감소로 이어진다.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EU DSM 지침을 국내법으로 수용하여, 창작자와 제작자가 함께 글로벌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정책 당국은 국내 제작자의 반대를 이유로 영상저작물 특례 개정에 미온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태도가 계속된다면, K콘텐츠는 명실상부한 ‘퍼블릭도메인’이 되어 글로벌 플랫폼의 브랜드 자산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마무리

K콘텐츠가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성과가 온전히 한국의 창작자와 제작자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영상저작물 특례 개정에 미온적일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한국의 콘텐츠산업인가, 아니면 넷플릭스의 ‘K콘텐츠’ 브랜드인가? 지금이라도 창작자와 제작자는 머리를 맞대고 글로벌 플랫폼에 공동 대응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K콘텐츠는 한국이 아닌 글로벌 자본의 브랜드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디즈니가 각국의 민담을 프린세스 브랜드로 만들었듯, 넷플릭스는 한국의 창작물을 K-콘텐츠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민담은 이미 퍼블릭도메인이었지만, 한국의 창작물은 살아있는 창작자와 제작자의 권리라는 점이다. 혹자는 유연하게 글로벌 플랫폼에 올라타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말한다.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로벌 플랫폼에 올라타서 유명세를 얻는 일과 그로부터 수익을 나누어 가지는 일은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세계가 한국의 콘텐츠를 주목하는 이때, 우리가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남을 자충수가 될 것이다.

1. European Commission, Study on contractual practices affecting the transfer of copyright and related rights and the ability of creators and producers to exploit their rights, 2025, pp.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