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K-콘텐츠인 이유
‘만든 곳’을 넘어 ‘향하는 곳’을 보라
조영신   ㅣ 미디어산업평론가 겸 동국대학교 대우교수

KoBPRA WEBZINE Vol.92

전 세계 41개국 넷플릭스 차트 1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일으킨 문화적 폭발 앞에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거대한 성공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왜 우리가 못 만들었지?’가 아니라,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 K-콘텐츠의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인가?’이다. 케데헌은 아쉬움의 대상이 아닌, 무한한 기회의 문을 열어준 열쇠다. 중요한 것은 ‘만든 곳’이 아니라, 이 성공이 우리를 ‘향하게 하는 곳’이다. 지금이야말로 쏟아지는 관심을 실질적인 기회로 ‘환전’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케데헌 이펙트,
기회를 넘어 시스템으로

‘케데헌’이 연쇄적으로 일으킬 산업 파급력은 명백하다. 관광객 3천만 시대를 열고, K팝을 고부가가치 ‘교육산업’으로 도약시키며, K-라이프스타일 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들을 개별적인 성공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을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시장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점이다. 이 구조 속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잃고 단순 공급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플랫폼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는 힘, 즉 ‘협상력’을 갖춰야 한다. 글로벌 1위를 기록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차기작 제작에 있어서 넷플릭스와 대등한 관계를 맺긴 힘들다. 영역별로 강한 이익 단체를 가지고 있는 미국조차도 제한적으로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한국어란 단일어와 한국이란 규모가 전부인 우리가 넷플릭스와 대등한 관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다.

새로운 성공 공식:
아시아와 함께 글로벌로 Go Global with Asia

‘케데헌’의 성공 공식은 자생적 ‘메이드 위드 Made with ’다. 북미라는 토양에서 흡수한 이민자들이 라따뚜이와 겨울왕국을 넘어서 코코로 이어지는 전략이다. 우리에겐 같이 흡수할 이민자들이 없어 우리나라 땅에서는 불가능하다. 넷플릭스를 상대하느라 부족한 IP와 자본을 아시아 전체 수준에서 같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른바 글로벌 지향용 공동 연대, 바로 made with다. 우리의 창의적 자산과 글로벌 자본의 결합을 넘어, 이제는 아시아의 잠재력을 하나로 묶어 글로벌 시장을 향해야 한다. 태국의 기괴한 민담을 한국의 정교한 제작 기술로 다듬어 미스터리 스릴러로 만들고, 베트남의 설화를 ‘아시아의 잔다르크’로 재창조하는 모델을 상상해 보라.

이 과정에서 한국은 기획, 제작, 유통 전반을 주도하는 ‘아시아 콘텐츠 허브’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시장을 합치는 것을 넘어, 각국의 문화적 자산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범아시아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연대야말로 거대 플랫폼 앞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협상력의 원천이다. ‘아시아와 함께 글로벌로 가자’고 외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플랜B가 필요하다:
K-애니메이션의 가능성

동시에 우리는 K-콘테츠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플랜B’를 고민해야 한다. 그 가장 강력한 대안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실사 영상물은 특정 인종의 배우나 언어가 주는 ‘문화적 할인 Cultural Discount ’에서 자유롭기 어렵지만, 애니메이션은 이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문화적 이질감 없이 전 세계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장르다.

‘케데헌’의 성공은 우리가 가진 K-웹툰이라는 풍부한 IP 자산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날개를 달았을 때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지 증명했다. 일본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제작위원회 시스템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협력하여 우리의 IP를 고품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사라졌던 청장년층 애니메이션 시장을 다시 열고, 미래를 위한 투자의 기반을 다지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결론: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판을 설계할 때

‘케데헌’은 국적이라는 낡은 경계를 넘어, K-콘텐츠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이제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새로운 성공을 만들어가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쏟아지는 관심을 기회로 환전하고, 아시아 연대를 통해 글로벌 협상력을 갖추며,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K-콘텐츠가 이 질문에 가장 혁신적이고 포용적인 답을 내놓는 플랫폼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 강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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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미디어산업평론가 겸 동국대학교 대우교수
미디어, ICT 산업 및 콘텐츠 비즈니스 전문가로 기업, 기관, 학계를 아우르며 급변하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과 콘텐츠 비즈니스의 생태계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SK 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과 SK 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방송학회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애프터 넷플릭스>와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