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칼럼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
공개 의무

조병한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정책기획팀장

KoBPRA WEBZINE Vol.89

AI 기본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AI 기본법 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024년 1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었다. 이로써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AI 기본법의 제정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그러나 AI 기본법 제정안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인공지능사업자에게 학습용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실연자의 입장에서 이 규정은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한 기술적 실업 *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 인간의 노동력이 고도로 발달한 기술력에 대체되어 실업이 발생하는 현상

우리는 인공지능의 위협에 어떻게 대비하여야 할까? 사실 우리와 가까운 음악실연자는 이미 100여 년 전 유사한 현상을 마주하였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그 경과를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아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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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용 음반에 의한
기술적 실업의 교훈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상업용 음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극장이나 지역 공연장, 심지어는 레스토랑에서도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음악가를 고용하고 있었다. NBC, CBS와 같은 미국의 대규모 방송사는 자체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실연(performance)을 매체에 고정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연을 복제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였으므로, 실연의 복제에 관한 권리를 입법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상업용 음반 제작 기술이 등장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미국음악가연맹(American Federation of Musicians) 회장의 발언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1

“음악가가 녹음실에서 연주하는 것은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연주하는 것과 같다.”

녹음을 하면 향후 연주할 기회가 사라지므로 연주자로서는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이다. 상업용 음반이 유통되면서 극장이나 레스토랑은 고용했던 음악가를 해고하고 손쉽게 녹음된 음악을 틀어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당시 사회는 상업용 음반의 재생을 일부 제한함으로써 생실연(live performance)의 기회를 지키려 하였다. 예컨대 영국의 BBC는 이른바 ‘축음기 바늘 시간(needle time)’을 제한하여 음악가가 무대에 설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였다. 하지만 기술이 진보하면서 산업환경이 변화하는 대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20세기 초반 인기를 끌었던 라이브 음악은 세기가 끝날 무렵에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 상황이 악화되자 음악가들은 국제노동기구(ILO)에 국제협약을 통하여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베른 연맹(BIRPI)과 유네스코(UNESCO)는 마침 음반제작자와 방송사업자의 권리를 포괄하는 저작인접권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음악가를 포함한 실연자는 저작물을 표현하여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저작물의 유통을 담당하는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와 같은 범주에 놓을 수 있었다. 이에 국제노동기구, 베른 연맹, 유네스코는 실연자,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의 권리를 포괄하여 저작인접권을 신설하는 로마협약을 공동으로 추진하였다. 로마협약 이후 음악가는 저작인접권자로서 상업용 음반의 유통에 대하여 보상을 청구함으로써 창작활동을 직업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연자의 권리가 태동하기까지 음악가가 처하였던 일련의 상황은 향후 예견되는 기술적 실업에 대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첫째 기술의 진보를 거스르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둘째 환경의 변화를 인정하고 기술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일부를 실연자에게 분배하는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업용 음반의 등장으로 음악가들이 직면하였던 기술적 실업을 타개하기 위해 저작인접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창출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교훈 삼아 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인한 기술적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새로운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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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습용 데이터에 대한
공개 의무의 법적 도입

위의 교훈에 비추어, 우리는 인공지능에 의한 산업환경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부가가치의 일부를 실연자에게 분배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성능을 발휘하려면 저작물, 실연 등의 학습용 데이터가 필요하므로 실연자는 인공지능의 실연 학습에 대한 사용료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하여서는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공개 의무를 법제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학습용 데이터의 목록이 공개되어야 창작자가 저작권법상 권리를 가지고 인공지능의 저작물, 실연 이용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용 데이터의 목록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실연자는 저작권법상 실연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는데도 불구하고 데이터의 이용 실태를 알 수 없어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다면 우리 실연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기술적 실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해외에서는 학습용 데이터 공개 의무를 규정하는 입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AI ACT) 제53조는 범용 인공지능 모델 제공자의 의무로 학습용 데이터의 목록을 공개하도록 정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AB2013 법률 역시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자가 학습용 데이터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였다. 연방 차원에서도 관련 법안이 논의되고 있어, 머지않아 미국의 연방법에도 해당 규정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제적 추세를 고려할 때, 학습용 데이터 공개 의무를 법제화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AI 기본법이 국회를 막 통과한 지금이야말로 이 규정의 입법을 논의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AI 기술의 발전과 창작자의 권리보호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1. Chesnais, Pierre. “The Rome Convention: twenty-five years later.” Copyright bulletin vol.20, no.4, 1986, p.10.

2. Towse, Ruth. “The Singer or the Song? Developments in Performers’ Rights from the Perspective of a Cultural Economist.” Review of Law & Economics vol.3, no.3, 2007, p.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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