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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록하는
감독의 또 다른 눈
드라마 스크립터 차미란
KoBPRA WEBZINE Vol.89   글.  이한빛  
하나의 작품을 위해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 스태프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드라마 현장. 이 안에서는 누구 하나만 잘 한다고 해서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각 파트별로 놓친 것은 없는지 면밀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고, 현장에 있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차미란 드라마 스크립터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참여하신 작품과 함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06년부터 드라마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는 차미란입니다. KBS <사랑과 전쟁> 시즌1을 시작으로 <일말의 순정>, <기황후>, <하이스쿨 러브 온>, <밤을 걷는 선비>, <청춘시대1,2>, <우리 사랑했을까>, <날아올라라 나비>, <보라 데보라>, <체크인 한양>, <끝내주는 해결사> 등 다양한 드라마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은 다음 작품 준비 중입니다.

흔히 카메라나 조명 파트는 많이 알고 있지만 ‘스크립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크립터’는 드라마 제작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직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스크립터라고 하면 대부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장의 ‘서기’ 같은 역할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요, 스크립터는 드라마 제작 시작단계부터 참여해 대본회의를 토대로 타임테이블 정리, 콘티작업을 합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여러 여건 상 대본 순서대로 찍지 않기 때문에 대본내용과 촬영내용이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기록하죠. 배우들의 연결 의상, 분장 상태 같은 것들도 담당 파트가 따로 있지만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 않도록 항상 더블체크 합니다. 촬영 종료 후에는 편집실에서 감독님과 함께 영상을 확인하며 감정 연결은 잘 됐는지, 빠진 부분은 없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한마디로 스크립터는 연출 감독님의 또 다른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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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스크립터’라는 직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원래는 방송작가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과 조교님께서 추천하셔서 그때만 해도 스크립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방송? 드라마? 그럼 일단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일을 할 땐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고, 지금은 함께 일했던 감독님이나 제작사를 통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작 관련해 다른 파트에서도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경우가 많던데 스크립터는 어떤가요? 직종 특성상 혼자인 경우가 많죠?
대부분 경력 있는 선배 밑에서 1대1로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는 촬영말미에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될 때가 많은데 이럴 땐 선배가 A팀을, 후배가 B팀을 맡아 촬영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고 촬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팀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많이 없어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스크립터가 A/B팀으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촬영 스케줄이 다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촬영 장소에서 스치듯 만나거나 종방연 때 얼굴을 보는 정도고, 각자 일정이 있어서 스크립터들끼리 모임을 갖기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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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촬영장에서도 주 52시간이 지켜지고 있고, 사전제작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쪽대본과 함께 거의 생방송처럼 촬영할 때가 많았는데요, 체력적으로나 수면부족 등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예전엔 일주일에 6일을 촬영하고 하루정도 쉬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엔 대본이 늦어지면 그때가 쉬는 날이 되는 거라 체력적으로 힘들 때면 “대본아... 늦게 나와라”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웃음),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좀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잠을 못자기 때문에 현장에서 깨어 있는 스태프가 거의 없었어요. 연출감독님, 촬영감독님, 붐맨, 스크립터 그리고 배우. 딱 이렇게만 눈 뜨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한 번은 촬영을 하는데 카메라 앵글이 점점 땅으로 내려가는 거예요. 놀라서 봤더니 촬영감독님께서 깜빡 조느라 카메라가 바닥을 향한 거였어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피곤하고 피곤하고 피곤했던 기억입니다.(웃음)

전반적인 촬영 내용을 기록하고 정리해야 하는 만큼, 연출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파트와의 소통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작업하며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말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서로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거든요.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선 대부분 예민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마음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존중해 줘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니까요.
연출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서로 손발이 잘 맞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작업한지 오래된 연출님과는 서로 눈만 봐도 다 알 것 같아요.
3개의 작품을 한 감독님과 함께 한 적이 있어요. 너무 잘 아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의견충돌이 생길 때도 있죠. 스크립터가 감독님과 의견충돌이 생긴다고 말하면 예의 없다 보실 수도 있지만 하나의 대본에서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얘기하고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번 함께한 감독님과는 이런 부분이 조금 수월하게 진행돼서 좋습니다.
반면에 처음 작업하는 감독님과는 성향을 잘 파악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눈치게임 같은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데, 감독님 역시 저와 같은 입장이실테니, 되도록 편하게 집중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다시 만나게 되는 스태프와 배우들도 많을 것 같아요. 작업하며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배우가 있을까요?

청춘물을 여러 편 작업하면서 신인배우들을 많이 만났어요. 시간이 흘러 다른 현장에서 그때 함께 했던 배우를 만나면 먼저 아는 척을 해주는 때가 많습니다. 워낙 시간이 흘러서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해주면 행복하더라구요. 올해 초에는 <Mr.플랑크톤> B팀으로 현장에 갔는데 김민석 배우가 저를 보고 반갑게 맞아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스태프들 중에서 막내였던 친구가 어느새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면 ‘시간이 빠르구나’ 싶으면서도 ‘대견하다 잘 견디고 있었네’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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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장이 불황이라 배우들만큼이나 제작스태프들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에 어떠세요?

정말 많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에요. 작년 가을에 준비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제작이 무산됐거든요. 그리고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 중 아예 직업을 바꿨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요, 다른 쪽에 경력이 없으니 일을 구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힘들지만 드라마 현장을 떠날 수 없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서른 초반에 잠시 이 일을 그만 두고 서비스직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결국은 다시 돌아왔죠. 사실 촬영 현장에선 잠도 많이 못자고 힘들지만 결과물이 명확하게 나오고,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가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품 하나를 위해 모두 한 마음으로 땀 흘리며 일했던... 그 짜릿한 순간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나이를 떠나 각자의 파트에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모습이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일이 너무 재밌고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아주 희한한 매력이 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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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과 함께 마지막 인사도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이 직업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드라마 시장이 불황임에도 이 일을 놓을 수 없는 건 유일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가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저는 여전히 드라마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앞에 나서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 무언가에 가려져 잊혀져있던 사건들. 그 예민하고 은밀한 것들을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 하고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맡은 일은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 일을 통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올해도 잘 견디고, 잘 해낸 우리 모두가 다가오는 2025년에는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