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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K콘텐츠 발전하려면
창작 생태계 지켜내야
한국방송작가협회 정재홍 이사장
KoBPRA WEBZINE vol.89   글. 엄지혜   사진. 김성헌
“강한 협회, 열일하는 이사장”
한국방송작가협회 정재홍 이사장이 후보로 나서면서 내걸었던 타이틀이다.
1995년 시트콤 <두 아빠>로 방송작가에 입문,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성공시대>에 이어 2000년부터 <PD수첩>을 만들고 있는 정재홍 이사장은 여전히 현역 방송작가다.
국회의사당이 훤히 내다보이는 건물, 2024년 12월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았을 것이 분명한 국회대로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정재홍 이사장을 만났다.
퇴근 시간이 가까운 시각에도 협회는 무척 바빠 보였고 정재홍 이사장은 한눈에 봐도 열일 중이었다.
생각하면
행동한다
올해 3월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후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K-콘텐츠 정당한 보상을 위한 창작자연대’(이하 ‘창작자연대’) 주최로 곧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릴 계획이었죠.
올 초부터 ‘정당한 보상법’ 입법화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어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양당 간사에게 참석을 부탁드렸고 문체부 장관님도 오시기로 했는데 지금 모든 이슈가 비상계엄으로 인해 정치권으로 집중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이번 공청회 목적이 이 법안의 중요성을 알리고 입법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일이라 지금은 행사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까요.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상당 기간 연기되지 않을까 싶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사장에 당선되자마자 협회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4월 총선 전에 당의 공약으로 만들고 협약식도 체결해야 하니까 마음이 급했던 것 같아요. 유튜브 저작권을 비롯한 저희 협회 현안을 갖고 각 당의 정책위원회를 찾아갔죠.
정식 임기 전인 2월 23일에 더불어민주당을 시작으로 국민의힘,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을 찾아 갔어요. 뉴미디어 저작권이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협약을 맺었죠. 그러던 중 국민의힘 한 당직자가 매우 호의적으로 이야기를 듣더니 의견을 하나 주시더라고요. 지난 회기 때 보니까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법안을 냈는데, 창작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 같으니 각 단체가 따로 제출하는 것보다 하나로 묶어서 법안을 내는 게 좋겠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총 8개 단체를 찾아갔고, 뜻을 모은 다섯 단체가 힘을 합쳐 지난 7월 ‘창작자연대’를 출범시키게 됐습니다.
‘창작자연대’가 올해 7월에 출범했잖아요. 진행이 무척 빨랐습니다.
제 좌우명이 “생각하면 행동한다”라서 일단 부딪혀봅니다. (웃음) 그리고 중요한 건 모든 단체가 이 정당한 보상법의 필요성을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연대하자는 물꼬가 필요했던 거죠. 단체장분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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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독립PD협회 등 5섯 단체가 모여 K-콘텐츠 '정당한 보상'을 위한 창작자 연대가 발대식을 가졌다.

이와 동시에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는 뉴미디어저작권위원회를 별도 신설하시고, 작가 원고료 인상을 위한 상설 전담기구도 설치하셨어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예산도 많이 투입하고 직원도 뽑았어요. 우리는 이제 뉴미디어 저작권을 확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미국, 영국, EU 사례를 모두 분석해서 우리에게 맞는 법이 무엇인지 연구했고요. ‘창작자연대’가 만들어지면서 각 단체들이 갖고 있던 법안, 자료들을 모아서 단일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도 많이 했어요. 협회마다 조금씩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과연 단일안을 도출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일단 대승적인 관점에서 소소한 이견은 극복해보자는 데 마음을 모았어요. 각각의 협회가 조금 손해 보는 조항이 있더라도 일단 한 발을 같이 내딛고 그 다음을 기약하자는데 모두 동의해주셨어요.
작가 원고료 인상을 위해 각 방송사들의 대표들을 모두 만났어요. SBS는 지금 협상을 진행 중에 있고요. MBC와 EBS는 현재 타결 직전이에요. 작가협회에 원고료 협상팀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접촉하려고 해요. 모든 작가들의 원고료를 올릴 수 없다면, 지나치게 취약했던 부분이라도 먼저 해결해보자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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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실 내에 설치된 뉴미디어 사업본부 업무추진 로드맵

‘정당한 보상법’
반드시 법제화해야
창작자들에게는 저작권료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을 때, 작가들도 저작권료를 상당히 많이 받았어요. 재방을 계속 보여주니까 기본 고료의 30% 정도가 저작권에서 나왔죠. 그래서 우수한 인재들이 방송작가군으로 많이 모였어요. 프로그램이 히트하면 평생 먹고 살 돈이 저작권료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OTT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일단 넷플릭스는 저작권을 인정 안 해요. 그냥 원고료 10% 더 줄 테니까 저작권은 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징어 게임>으로 넷플릭스가 2조 원을 벌었느니 어쩌니 하는데, 창작자들은 그냥 원고료, 연출료만 받고 끝난 거예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작가조합에서 파업을 해서 재상영분배금을 받아냈어요. 영국 작가조합도 마찬가지고 EU는 아예 법을 만들었어요. 넷플릭스가 창작자들에게 저작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돈을 벌면 거기에 대한 보상을 내놓으라는 걸 ‘정당한 보상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를 시켜버린 거죠.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업체들도 정해진 액수의 수당에 따라 재상영분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창작자들은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전 세계 작가들은 법의 보호를 받아 뉴미디어 전쟁터로 나가는데, 한국 작가들만 아무런 보호 없이 저작권을 약탈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작비 자체를 넷플릭스가 좌지우지하니까 넷플릭스가 원하는 것만 만들 수밖에 없어요. 또 제작비를 높여버렸기 때문에 이제 국내 제작사들은 작품을 못 만들어요. 요즘 방송사들은 드라마를 제작하면 적자예요. 흑자를 보고 싶으면 드라마를 만들면 안 되는 실정이죠. 방송작가들이 창작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가 지금 완전히 무너지고 있어요. 적어도 EU의 ‘정당한 보상법’ 차원의 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해요. 창작자들의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이 생태계가 무너지는 건 일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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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가 등장한 후 방송사를 비롯해 제작사들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현직 방송작가의 경우 제작사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이미 방송된 프로그램의 대본료도 못 받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작가협회에 도움을 청할 수 있나요?
협회에 변호사님이 직원으로 계십니다. 법무팀으로 연락 주시면 안내를 해드려요. 법적 대응을 할 때,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으로 신고할 수 있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권리보장법으로 보호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행정 조치를 취할 것인지 고용노동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소송을 통해 받아낼 것인지 변호사님이 상담을 통해 추천해드려요.
최근에 <나는 솔로> 남규홍 PD가 작가들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한 사건이 많이 기사화됐죠. 견디다 못한 작가들이 모두 일터에서 쫓겨났고요. 한국방송작가협회는 <나는 솔로> 작가들이 그동안 받지 못했던 저작권료를 소급해 받을 수 있도록 방송사와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방송작가협회 회원이 아니어도 상담을 받을 수 있나요?
비회원이더라도 방송작가라면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모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뜻이고요. 지금은 일이 상당히 많아져 별도 기구를 만들려고 해요. 상담을 받고 바로 행동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배 작가들에게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싶다
이사장님께서는 지금도 <PD수첩>을 만들고 계시죠?
네. 지금까지 방송작가협회 이사장들은 모두 현역에서 집필하면서 이사장 업무를 해왔어요. 이번 비상계엄으로 최근 <PD수첩>이 긴급 편성이 돼서 ‘서울의 봄’ 3부작을 찍었어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본을 쓴 첫 작품은 시트콤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사교양 작가가 되셨나요?
오래 전에는 MBC에서 작가 공채 시험이 있었어요. 그런데 몇 해를 진행하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겨서 PD들이 알음알음 작가들을 채용했어요. 그때 우연한 기회로 예능 PD들과 연결이 돼서 시트콤을 하게 됐는데 워낙 준비 없이 시작해서 제가 손을 대는 프로그램마다 다 망했어요. (웃음) 그러다 시사교양 쪽에서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를 기획한다고 해서 합류했는데 이 프로그램이 잘 됐어요. 그 다음에는 <성공시대>를 하다가 <PD수첩> 팀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제가 원래 학생 때부터 사회변혁에 관심이 많았어요. <PD수첩>을 하면서부터 좀 행복했죠. 내가 단순히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D수첩>을 2000년에 시작했는데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한 번 해고당했다가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 때 복직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 팀과 영화 <자백>, <공범자들> <삽질>도 만드셨어요. <PD수첩> 작가라는 이유로 민간인 사찰도 당하셨고요.
<PD수첩> 할 때 4대강을 다뤘잖아요. 국정원에서 제작진들은 다 해고하라고 했어요. PD들은 일반 사찰을 당했고 저만 대공팀에서 사찰했어요. 프리랜서 작가가 좀 약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평상시에 일이 없으면 자전거 타고 기타 치고 다니거든요. 아마 사찰한 사람들도 좀 황당했을 거예요. 뭔가 혐의는 잡아야 하는데. (웃음) 그때 민간인 사찰한 걸로 지금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소송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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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해고 이야기를 담은 『악 소리나는 이야기』가 2012년에 출간되었죠. 12년이 지난 지금, 방송은 어떻게 변했나요? 여전히 같은 모습도 있을 테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든 영화든 어느 순간 검열이 찾아오고 창작의 자유가 없어지면 좋은 작품이 절대 탄생할 수 없어요. 자유가 있을 때 각자의 개성이 나오고 어떤 철학, 세계관이 녹아나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방송 언론에 대한 검열은 이전부터 이미 시작됐었어요. <뉴스타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잖아요. 이런 풍토는 제발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스템은 오직 자본입니다. 장사되는 건 빨리 만들려고 하고, 정부를 비판하면 프로그램을 폐지하라고 하죠. 자기 양심에 따라 글을 쓰고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와야 좋은 작품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지만 불안정한 노동환경 때문에 고민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방송작가의 경우, 올드 미디어에 대한 저작권은 어느 정도 확보됐어요. 문제는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 OTT, 포맷 저작권이죠. 저희 집행부가 출범한지 이제 곧 1년이 되는데 재임 기간에 적어도 OTT에 관련된 정당한 보상법, 유튜브 저작권을 확실하게 확보해서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배우들도 그렇고 연출자들도 그렇지만 방송작가들도 정말 밤잠 안 자고 뼈를 갈아 넣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뉴미디어 시장에서 우리 창작자들이 더 용기를 갖고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 드릴 테니, 조금 더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창작자연대와 한국방송작가협회의 활동을 지켜봐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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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koejejej
인터뷰어와 작가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태도의 말들』,『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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