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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틸러

배우
김혜화
KoBPRA WEBZINE Vol.89   글.  이한빛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무수히 많은 기회가 와도 그것이 기회임을 알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며, 마치 대장장이가 멋진 강철검 하나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내리치고 또 치며 단련하듯 끝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은 그는, 2021년 tvN드라마 <마인>에서 일명 ‘막장 재벌’ 한진희 역을 기점으로 누구보다 강하게 빛날 보석임을 증명해 냈다. 이후 <법쩐>, <손해 보기 싫어서>, <지옥에서 온 판사>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내며 아직 보여 줄 것이 더 많다고 자부하는, 다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 김혜화를 만났다.
지옥에서 온 판사
그리고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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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촬영 기간 중 가끔 멍을 때리다가 문득, "아! 이건 기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세 자매가 한 작품 안에 계속 해서 남아 있을테니 제겐 보물 같은 작품입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지상파를 비롯해 OTT까지 다양한 채널을 오가며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내셨습니다.
얼마 전 좋은 반응으로 종영된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처음 형사역을 맡으셨어요.
감사하게도 일거리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해였어요. 다행히 각 작품들의 촬영 기간이 겹치는 때가 거의 없어서 나름 여유 있게 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안심하며 작업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옥에서 온 판사>의 소영 역할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녀의 내면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 했죠. 그녀의 정의로움, 희생정신, 연민의 감정, 책임감, 용기, 천사 같은 마음 등 실제의 제 것 보다 훨씬 큰 그 마음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국내외의 접할 수 있는 형사 관련 드라마, 영화, 특히 다큐멘터리들을 찾아보면서 형사들이 일상과 사건들을 겪을 때 어떤 심정인지,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들을 수 있었죠. 특히 어떤 형사님께서 “살인사건 현장에 나갈 때마다 영혼에 상처가 하나씩 더 생긴다”고 말씀하신 부분과 “오로지 정의감 하나로 힘들지만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 깊이 담겼고, 그런 부분을 간직한 채 소영이라는 인물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더하여 감독님이 부여하신 따뜻하고 오지랖 넓으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자연스레 스며 나올 수 있도록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액션신도 소화해야 했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액션 신은 어려웠지만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대본으로 볼 때는 크게 어려울 것 없겠다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제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생각보다 몸은 느리게 움직였고 자세도 제 머릿속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호흡 하는 것도 일상 연기와는 다른 노하우가 필요했죠. 그래도 경험이 중요하다고 첫 날보다 둘째 날은 좀 나아지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허나 그 어려움들과는 별개로 어렸을 때 제가 상상하던 로망이 실현되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오래 되어 잊고 있었지만 초등학생 때 늘 누워서 액션을 하며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곤 했거든요.
몸은 매우 고되고 어떤 신을 찍을 땐 이러다 심장이 버티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 막히고 뜨거운 순간이 있었지만 희열의 짜릿함을 맛보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액션 연기를 더 해보고 싶습니다. 아주 화끈하게요. 이번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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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판사>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재화, 김혜화, 김승화 자매(왼쪽부터) © SBS

함께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언니 김재화 배우와 동생 김승화 배우까지 세 자매가 모두 <지옥에서 온 판사>에 출연해 화제였습니다. 세 자매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좋아하실 부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요, 촬영 기간 중 가끔 멍을 때리다가 문득 "아! 이건 기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고, 그리 되기까지 모든 과정들을 생각한다면 결코 쉽게 올 수 있는 기회는 아니니까요. 세 자매가 한 작품 안에 계속 해서 남아 있을테니 제겐 보물 같은 작품입니다.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같은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게 되고, 제 촬영이 없더라도 재화 언니가 혹은 승화가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팀에 더 애착이 가고 소속감이 생기는 느낌이 컸어요. 현장에 계시는 분들과도 자매들 얘기로 한 마디라도 더 나눠 친근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죠. 제 촬영이 없는 날엔 가벼운 마음으로 자매들의 촬영을 지켜보기 위해 찾아가기도 했는데 덕분에 다른 시각으로 현장을 접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면모로 내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나타날 문을 위해 준비한
나만의 주특기, 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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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역할이라면 발음이나 억양 등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니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외국어로 연기할 때 더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 자의식에서 더 많이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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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외국어 공부를 해오셨다고요?
어려서부터 영어를 시작으로 외국어 공부에 흥미를 느꼈어요. 부모님께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접할 기회를 주신 부분이 크고 팝송과 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죠. 미국 시리즈물 <비버리 힐즈의 아이들>을 보고 막연하게 “나도 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될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살던 동네의 여자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아주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결론적으로 그 여고를 아주 재밌게 잘 다녔지만요.(웃음) 프랑스어, 중국어도 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배웠던 게 아까워 잊어버릴까봐 계속 관심은 갖고 있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감정표현을 하고 그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외국어 연기는, 제가 한국인으로서 외국어를 하는 역할이면 한국어로 연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외국인 역할이라면 발음과 억양을 정말 잘 해야 하니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촬영 때는 발음이나 억양 등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니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외국어로 연기할 때 더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 자의식에서 더 많이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글로벌 OTT 시대’가 열렸습니다.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기회가 된다면 진출하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부분일 수 있지만, 대학 졸업 하자마자 프랑스에 가 머물며 공연을 창작해 올리기도 했고 <Sense8>이라는 미국 시리즈에 잠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일 하는 부분을 염두 해두고 있습니다. 몇 번 안 되지만 미국, 캐나다, 프랑스 작품의 오디션에 참여하기도 했죠. 우선 지금 제가 있는 곳에서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면서 제 앞에 자연스레 어떤 문이 생긴다면 두드려 보고 싶습니다.
어느덧 데뷔 20년 차,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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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가 있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라든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꺼지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견딜 수 있게 해 준 건 주변 사람들과 연기 자체의 매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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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까지, 긴 터널 같았던 시기를 견뎌낼 수 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그 시간 동안 저 나름대로 주어진 일을 하며 보냈어요. 도전의 연속이었고,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는 것과 별개로 일을 하는 기쁨 혹은 연기에 대한 탐구와 어려움, 좌절 등을 겪으며 나름 흥미롭고 보람되게 지냈습니다.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른 경험을 할 시간이 주어져 기뻤습니다.
힘들 때가 있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라든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꺼지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견딜 수 있게 해 준 건 주변 사람들과 연기 자체의 매력이었어요. 힘들 때 격려를 해 준다든가 때로는 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 연기 워크샵에 참여하자는 등 재밌는 활동들을 제안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길에서 멀리 떠나지 않게 되었고, 프로덕션의 크고 작음을 떠나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재밌어 그 힘으로 그냥 거기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걸어온 그 길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일하는 환경이나 저의 생각이 조금 더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같은 길 위에 있고, 견디고 싸워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유연해지고 더 강해져야 할 것인가?... 같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혹시라도 너무 힘들어서 연기가 아닌 다른 길을 꿈꿨던 적도 있으셨나요?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어요. 면접 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제 자신과 답의 내용을 들여다보며 그냥 하던 대로 배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딱 접고 더 적극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겪는 수많은 경험들이 언젠가는 다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배우님께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배역을 얻기 위해 수 없이 도전했던 오디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낯선 나라에서의 생활, 대학 입시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간, 배우로서 만났던 다양한 일자리가 떠오르네요.(웃음)
감정을 표현하는 일인 만큼 작품을 할 때마다 쌓아온 모든 걸 쏟아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비우고 나면 다시 채워 넣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은데요, 어떤 것으로 내면을 충족시키나요?
운동, 글쓰기, 독서, 영화·드라마 보기, 외국어 공부, 피아노 치기, 반려견과 산책하기, 청소가 일상생활이고 가끔 전시회나 공연을 보러 갑니다. 이렇게 하며 비우기와 채우기를 반복합니다. 촬영 할 때와 쉴 때의 차이점은 쉴 때는 웬만하면 건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노력한다는 점, 그리고 장기간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헤어스타일을 바꾸어 기분을 전환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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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엔 여행도 다녀오셨던데, 잠시 일상과 분리 되어 지내다 보면 연기적으로도 많은 영감을 받을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일상의 것들이 달리 보여 신선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똑같은 일상생활을 보내도 마치 새로운 곳에 여행을 온 것처럼 일상의 것들이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늘 같은 시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제 방 안의 햇살도 여행 후엔 이전의 것과는 좀 달리 느껴지는 그런 것이요. 그렇게 됨으로써 뇌의 어떤 창의적인 부분이 건드려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것들이 연기에도 어떤 영감을 주겠지요. 혹은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저에게 없었던 감정을 더해주기도 하고요. 타국에서의 낯선 오감 자극이 연기적 영감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해 보면서 새로운 여행 계획을 또 세워보고 싶습니다.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와 이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직 보여주지 않은 더 많은 모습이 있을 거란 생각과 함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끝인사와 함께 앞으로 어떤 연기자로 남고 싶은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코프브라 웹진을 통해 인사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저희 드라마를 시청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게는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정말 많은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언젠가 좋은 기회로 그런 것들을 꺼내 흥미로운 캐릭터로서 인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저는 “연기 잘하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고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제이풀엔터테인먼트, 김혜화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