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프로듀서
이재석
KoBPRA WEBZINE Vol.88   글. 오로라프로젝트   사진. 김성헌
지상파와 소셜미디어 간 무대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크리에이터들의 활동 영역도 다양화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보던 인플루언서가 지상파에 출연하거나, 반대로 지상파 연예인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모습이 더이상 낮설지 않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더 인플루언서>의 프로듀서 이재석 피디를 만나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 시장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scene #01 _____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더 인플루언서>까지
국내 인플루언서 77인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인플루언서>가 지난 8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방송 전부터 국내외 팬들과 언론의 관심이 높았는데요. 기획자이자 프로듀서로서 2024년 8월,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무래도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좋은 반응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고, 함께 참여한 분들도 보람을 느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쓴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또 잠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웃음), 평소보다 감정의 기복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반응이 특히 기억에 남았나요?
‘국내에 이렇게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있는지 몰랐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반응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시청자들이 잘 몰랐던 인플루언서나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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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tflix


잠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제작했던 2015년으로 돌아가 볼께요. <마리텔> 방영 후, ‘센세이션하다’는 평가와 함께 언론과 방송계에 큰 이슈가 되었어요. 반응을 예상했나요?
<마리텔>에서 선보였던 ‘생방송 실시간 채팅’은 당시 메인 PD였던 박진경 PD와 제가 관심을 많이 가졌던 분야예요. 하지만 생방송은 대부분 쇼 위주였고 예능에서는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포맷이었죠. 게다가 인터넷 방송이나 채팅도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이었고요. 그래서 막상 제작할 때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나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는 건 상상도 못 했고, 어떻게 하면 부족한 일손으로 우리가 생각한 즐거움을 다양한 연령층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던 것 같아요.
팬덤이 형성되고 국내외에서도 많은 수상을 하셨어요.
이렇게까지? (웃음) 라고 생각했어요. 상을 많이 주셔서 너무 감사했지만, 어떠한 공적보다 좋았던 점은 시청자들의 공감이었어요.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처음 기획 의도에서 벗어날 때가 많은데, 우리가 의도했던 점이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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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방영된 MBC <마이 리틀 텔리비전>의 한 장면. 당시 일반인 셀러브리티로 출연한 백종원이 실시간 채팅을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진행하고 있다. © MBC

<마리텔>에서 <더 인플루언서>까지 9년이라는 긴 공백을 이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인플루언서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마리텔>이 방영되었을 때, 당시 유명한 연예인보다 일반인 출신의 인플루언서들이 더 많은 화제가 되었어요. 기존 방송에서는 보기 힘들고 자신만의 전문적인 콘텐츠가 명확한 분들이었죠. 비록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콘텐츠가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죠.
하지만 인플루언서나 콘텐츠라는 소재적인 결은 같지만, <더 인플루언서>는 출연자가 한분 한분의 콘텐츠와 소통에 집중했던 <마리텔>과는 전혀 다른 포맷이었어요. 걱정을 안 했다면 거짓말인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리텔> 때 경험한 인플루언서에 대한 믿음이 큰 동력이 된 것 같아요.
scene #02 _____
지상파와 OTT
<마리텔>과 <더 인플루언서>는 각각 지상파와 OTT 플랫폼을 통해 방영되었어요. 규제라는 프레임을 놓고 본다면 두 플랫폼은 어땠나요? 아무래도 OTT가 훨씬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요, 꼭 그렇진 않아요. OTT라고 해서 모든 규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나 영화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예능은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아예 19금 레벨이 아닌 이상 다양한 연령층이 볼 수 있게 제작하는 건 지상파나 OTT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플랫폼의 차이를 찾는다면 규제보다는 타겟팅 선정이지 않을까 해요. 지상파는 7, 8세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까지 아우르다 보니 누가 봐도 채널을 고정할 수 있게 하는게 중요하지만, OTT는 지상파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타겟층을 세분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특정 타겟을 붙잡을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할 수 있죠. <더 인플루언서>는 지금과 같은 포맷으로는 지상파에서는 제작을 못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작 방식에서 본다면, 사전 제작 후에 전 에피소드를 동시에 공개하는 OTT 작품의 경우 대중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어요. <더 인플루언서>는 기획 회의부터 최종 편집 후 공개되기 까지 총 1년 2개월이 걸렸어요. 작품 완성에는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었지만, 피드백을 반영하는 건 어려웠어요. 첫 질문에서 지난 한 달 긴장하면 지냈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같은 맥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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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3 _____
인플루언서
5개월의 섭외 과정에서 국내 인플루언서 200명을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국내에서 인플루언서를 가장 많이 만나보셨을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만난 인플루언서는 어땠나요?
한두 단어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분들이지만, 대부분 엄청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쳤어요. 그리고 첫 미팅처럼 낯선 상황이나 실시간 반응이 중요한 콘텐츠에 익숙한 분들이 긴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더 인플루언서>의 제작 기간과 같은 변수를 대하는 태도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어요. 고정된 생각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피드백에 맞춰서 유연하게 움직였는데, 그런 점은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행동은 자신감에서 온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콘텐츠를 던져보고, 유연하게 틀어도 보고, 괜찮으면 좀 더 시도해 보는 작업들을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어요.
이전에 비해 인플루언서 파급력이 커지는 것을 체감하나요.
물론이죠.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소위 ‘하나가 터져도’ 시너지 낼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어요. <마리텔>을 처음 방영했던 2015년만 해도 유튜브는 생소한 플랫폼이었죠. 당시 출연하셨던 백종원 대표님이 아내인 소유진 배우님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왜 사업가가 유튜브를 하지?라는 인식이 컸거든요. 그런데 지금 유튜브는 수많은 플랫폼 중 하나일 뿐이죠. 확실히 입증된 콘텐츠가 하나 있다면, 길게든 짧게든 어떤 플랫폼이 되었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죠.

scene #04 _____
크리에이터 시장의 빅블러
콘텐츠 제작자로서 본다면 인플루언서들도 모두 경쟁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죠. 인플루언서 뿐 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도 어떻게 보면 모두 저의 경쟁자이죠. 요즘은 모든 영역의 장벽이 다 허물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소셜미디어 진입 장벽은 갈수록 낮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뭐든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요.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진 않겠지만, 가끔 ‘큰일 났다. 어떻게 이기지.’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저에게도 그만큼 더 많은 채널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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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5 _____
예능 PD
왜 예능PD가 되었나요?
고등학생 때 학교 축제가 꽤 컸어요. 그중에 특히 가요제는 다른 학교에서도 참가할 수 있어서 예선도 치열했죠. 학생부 활동을 하면서 MC, 조명, 무대, 음향 등 행사에 대해 전반적인 경험을 했어요. 그전에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하지 않았는데, 가요제를 준비하면서 친구나 선후배와 같이 일하는 것, 관객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꽤 보람이 되고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 이런 일을 하려면 PD가 돼야한다는 걸 알았어요. MBC 입사 후 <무한도전> 조연출 막내로 시작했어요. 시작은 가요제였지만 사실 PD가 된 후에 쇼 프로그램은 아직 못 해봤어요. (웃음)
왠지 예능PD라고 하면 외향적인 성향일 것 같은데, 이것도 하나의 선입견이겠죠?
많은 인플루언서 분들과 함께 작업을 했으니까 저도 엄청 외향적인 성향이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저는 엄청 내향적인 편입니다. 평소에는 조용해요. 정말이에요. 염세적이거나 부정적인 성향도 있어요. 걱정도 많고 불만도 많고...(웃음) 그래도 이건 제 개인 성향이고 일할 때는 달라야죠. 정말 많은 분과 일하기 때문에 팀 내 원활한 소통을 위해 활발하게 소통하고 멘탈도 긍정적으로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재석표 예능이란?
보시는 분들이 호기심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인물이든 스토리든 포맷이든 어떠한 형식이라도 호기심이나 궁금함을 남기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어떤 메시지 담는 건 할 줄도 모르고 사실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주관적인 해석 없이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담아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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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6 _____
동기부여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PD님만의 소중한 기억이 있나요?
조금은 식상한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저는 ‘같이 일하는,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동기부여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사실 제가 굉장히 쉽게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성격이거든요. ‘열심히 해보자!’ 다짐을 해도 몇 시간 못 가는 편인데, 그런 순간마다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주는 존재가 주변 동료들이에요. 선후배 PD부터 스태프 모두요. 막 입사한 막내 PD나 작가분들이 저보다 더 고민하고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물론 프로그램이 잘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동료들과 현장에서 고생하고 웃으며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게 보람이에요. 저에게 ‘동기’가 되어주는 분들을 많은 만난 게 저는 복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누군가 PD나 프로그램으로 저를 알아본다면 다 동료들 덕분이에요. 얼마 전에도 <더 인플루언서> 런칭 후에,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작가분들을 만나서 응원도 받고 했는데, 사실 이런 게 제 낙이에요. 그래서 특별한 취미도 없어요. 한때 함께 열심히 일했던 동료들에게 ‘감 떨어졌네’, ‘예전 같이 않아’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웃음) 저에게 엄청 큰 동기 중 하나에요.


scene #07 _____
이재석의 인플루언서
최근 영향을 준 인플루언서가 있나요?
<더 인플루언서> 촬영을 하며 울림을 크게 준 분이 있는데, 파이널에 올라갔던 이사배 씨에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인플루언서를 만나면서 공통으로 느낀 부분이 ‘성실함’이었는데, 그런 면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남은 분이에요. 잘 아시겠지만, 이사배 씨는 뷰티 크리에이터예요. 활동한지 거의 10년이 됐는데 그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우물만 판 분입니다. 메이크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정말 다양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오셨어요. 지금까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했고요. 팬덤과 크리에이터 사이의 애정과 신뢰도 정말 큰 것 같아요.

이사배 씨를 보면서 한 분야에 미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긴 시간 동안 꾸준하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10년 여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프로그램 하나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한 계기가 되었어요. 다양한 소재와 포맷을 만드는 걸 즐기는 저는 절대 될 수 없는 캐릭터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서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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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플루언서>에 출연한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 © Netflix